내가 시골에 사는 까닭 쉿 들어봐! 불을 끄고 누웠는데 갈갈갈갈 골골골골 참개구리 우는 소리가 이리 좋을까. '잠도 오지 않는데 잠깐 밖에 나가 밤 마당이나 거닐다 올까?'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창호문을 열었어. 야, 오늘따라 달빛 한번 근사하구나. 바람에 나뭇잎들이 솨악솨악 쓸리는 소리, 멀리 개들이 컹컹 짖어 대는..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6.10
낮달 고추, 가지 모종이랑 토마토 모종을 사와 점심때 닿도록 부지런히 심었다. 후북하게 물까지 길어주고 머리숙여 합장하며 잘 자라주길 기도했다. 올 여름에는 찬물 말은 밥에 된장을 담뿍 찍어 먹는 풋고추 한 밭이면 입맛 빼앗는 더위 아니라 더위 할애비라도 무어 두려우랴. 내가 즐겨하는 토마토는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4.16
돋보기 안경 순서 아짐이 저녁예배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놓고 간 돋보기 안경 글씨를 모르는 순서 아짐은 동갑내기 집사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저지난달에 찬송가책을 사고 지난달에는 성경책도 사고 얼마 전엔 돋보기까지 샀다 누가 볼까 맨 앞에만 앉는 순서 아짐은 성경책을 펼 때 찬송가를 펴고 찬송가를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4.06
따순 가슴팍 방깃방깃 꽃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병아리를 닮은 노란 수선화는 그토록 깡깡하던 얼음땅을 뚫고 올라와 펑펑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새순을 내민 일만도 그 아니 장하고 대견한 일인가. 하물며 꽃잎까지 나푼거리다니, 갸륵한 수선화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도 가실 마음이 없다. 토방 아래 고무신..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4.02
봄에는 꽃만 필까 후룩 후루룩, 라면발 넘어가는 소리가 토방 마루 너머까지 흘러나왔다. 인기척에 놀라 다급히 냄비 뚜껑을 덮는 소리는 그 뒤를 따라 이어져 들려왔다. "앗따메 민정이 엄마는 라면 잡수는 소리까정 곱네요이." 무색하겠다 싶어 선수를 먼저 쳐주었다. "금방 끼니땐디 뭔 라면이랍니까?" "이눔이 하도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6
저수지 둑길 오늘 하늘은 구름떼로 뒤덮여 열기가 많이 수그러든 여름날이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후텁지근하기는 매일반이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대자리에 누워 있는데 볕 마당 대신 방에다 널어둔 고추 때문에 재채기가 연발이었다. 빨간 고추들이 자꾸만 나를 밖으로 떠밀어냈다. 구멍가게에 들러 얼음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6
직녀에게 저녁 예배 마치고 교인들이 다 떠나고 나니 예배당 안이 휑 했다. 오늘도 나 혼자서 예수님이랑 뒤풀이를 해야 될 성싶었다. 그래 일찍이 다른 별에서 나의 연인이었을 이네싸 갈란테를 불러냈다. 그녀의 음반을 올려놓고 내가 즐겨듣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까지 듣고 나서야 예배당 문을 닫을 수 있..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2
외등 저녁밥상을 물리고 차도 한잔 우려서 마시고 나니 잠이 담뿍 눈 안에 차 올랐다. 그러나 밤도 길어졌는데 일찍 잠들었다가는 내일 하루가 노골노골 해질 듯 싶어 눈을 거푸 비벼댔다. 밖이 요란하길래 나가보니 어머니가 두리번을 앞에 놓고 야단을 치고 계셨다. 강아지가 신발 한 짝을 물어가서 당최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2
참지름 한 뱅 어딜 다녀와 보니 툇마루 위에 소주 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뚜껑 자리에 비닐을 덮고 검정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소주 병. 이게 무얼까, 손에 미끈히 기름기가 묻고 코끝으로는 고소한 냄새가 스민다. 참기름이로구나. 누가 놓고 가셨을까. 어머니에게 여쭸더니 석리댁 할머니란다. 반드시 나만 먹어야..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2
사이다 맛 가랑비가 그치자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의 그 날이, 오늘이었다. 장흥 천관산을 넘어온 태양은 강진 탐진 들판을 다사롭게 달구며 봄의 중턱에서 여름의 저만치로 나날이 길을 서두르고 있다. 올 여름에도 선욱이 지훈이 남준이가 불알을 짤랑거리며 물넘이에서 멱을 감을까? 녀석들이 올해는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