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지붕뚫고하이킥 - 지훈의 마지막 대사의 의미
하지만
무엇보다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많이..
처음이였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때마다 설레이는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미안하다.. 상처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하이킥이 최고의 작품이건 최악의 졸작이건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이건 각인을 시킨 드라마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드라마도 아닌 시트콤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비록 그게 동의의 박수가 아닌 실망감과 분노라고 할지언정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이킥의 두배 이상의 시청률을 끌어낸 아이리스나 선덕여왕도 이정도의 쇼크적인 반응은 끌어내지 못하였었죠.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잊혀짐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쨌거나 하이킥은 절반의 성공은 이뤄냈다고 보여집니다. 저 역시 하이킥이 끝나고 감당할수 없는 우울함의 오오라 때문에 며칠간은 참 힘들었었는데요. 웃음을 줘야할 시트콤이 슬픔을 주고 떠났으니 그 죄는 무기징역감이라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충격과 허망함이 가시고나서 느낀 것은 웃음을 뛰어 넘는 벅찬 슬픔의 감동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느낌을 받을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는 신세경이며 독자는 이지훈이라는 것을 항상 느끼고 봤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와 비슷한 감상으로 드라마를 시청하셨던 분들은 충격의 깊이 대신 여운을 가지신듯 했으나 지훈과 정음의 러브라인에 초점을 맞추고 보신 분들에겐 적지 않은 실망감과 분노를 감출 여력이 없어보이시더군요.
하이킥 관련 리뷰를 몇번이나 쏟아내며 말씀드렸듯이 지훈은 단순히 정음의 상대자 역할이 아닌 하이킥의 운명적 러브라인의 마지막을 결정할 중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전에 적은바 있지요. 이지훈이 사랑의 각성을 할때 하이킥이 끝날 것이라고요. 물론 그 각성이 그렇게 제 말처럼 정말 몇초를 남겨둔 마지막일 줄은 저도 상상 못한 바이지만요. 하이킥의 이지훈은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 곤혹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연기자 본인도 굉장히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느껴지는데요. 역시 이지훈을 연기한 연기자 최다니엘 역시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라고 이지훈의 몽롱한 상태를 표현한바 있습니다. 이유는 몇번이나 제 글에서 밝혔듯 이지훈은 유일하게 하이킥에서 시점이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예요. 참 재밌게도 하이킥의 메인 러브라인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이지훈임에도 희한하게 이지훈 중심의 에피소드는 없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에피소드라고 하면 대부분 세경의 짝사랑의 상대가 되거나 황정음의 상대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지 이지훈 스스로의 눈으로 본 하이킥을 그려낸 적은 한번도 없었지요. 그렇다면 왜 그토록 이지훈의 시점을 감춰뒀던 것일까요.
그것은 위에도 말씀드렸듯 이지훈의 각성이 하이킥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이킥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고나서야 곱씹어보듯 느낀 감정이지만 하이킥은 결국 "인연"을 말하는 드라마였음이 확신이 되더군요. 하이킥의 주인공들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그대로 실천하듯 수많은 관계를 형성하며 사랑을 합니다. 그 과정은 마치 사랑을 찾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준혁은 정음에게 마음이 있었고 정음 역시 준혁에게 마음이 있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무색하게도 억지로 끊으려해도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처음부터 인연인 이른바 '소울메이트'라는 것이 하이킥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지훈, 신세경이죠. 사실 이지훈 신세경은 메인 러브라인이라고 할만한 에피소드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신 생활 속의 이들의 촘촘한 인연의 끈은 항상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더군요. 준혁의 팬티를 찾는 세경에게 와서 생뚱 맞게 묶을수 있는 것을 찾으러 왔다는 이지훈의 말은 붉은실로 이어져있다는 평생의 인연을 뜻하는 복선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신세경이 산골을 벗어나 처음 인식한 사람 역시 이지훈이었죠. 그것도 한번이 아닌 자신의 신발을 내던지고 오는 장면이나 소매치기로 오해하는 장면, 그리고 주유소에서 지훈에게 실수를 하는 세경의 아르바이트등 무려 세번이나 만난 이순재네 가정의 인물은 이지훈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어질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죠.
하이킥 속의 신발은 꽤나 중요한 의미를 보여줍니다. 처음 세경은 지하철 속에서 신애를 찾으려다 실수로 지훈에게 낡은 자신의 운동화를 남겨버리고 맙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데렐라의 벗겨진 구두 정도로 생각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흔히 신발은 인연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하나의 복선이 떠오르더군요. 남에게 참견하기 싫어하는 성격의 이지훈은 차마 낡고 낡은 헌 세경의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그대로 가져와 또 우연히 순재의 집에 들어오게 된 세경을 만나 그 신발을 다시 건네줍니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 아닐수 없어요. 세경의 운동화는 포기하려고 했던 지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지훈과 세경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가 이루어진것은 지훈이 있는 것을 모르고 각기 다른 곳을 걸어가다 세경의 신발이 꺾여 그것을 고쳐 신으려고 돌아선 세경과 지훈이 서로를 발견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오더라도 어디선가 1초라도 지체를 했다면, 하필 세경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어도 바래다 주지 않았더라면 " 정음의 말은 어떻게해서도 이어질수밖에 없는 지훈과 세경의 운명적인 인연을 다시 되짚어줍니다. 친절하게도요. 오랜만에 같은 장르의 시트콤이 떠오르더군요. 소울메이트라는 시트콤, 기억하시나요?
시트콤 소울메이트의 신동욱과 이수경은 처음부터 이어질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연이었습니다. 그들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길거리의 음악으로 인해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몇번이나 마주치며 서로가 운명임을 깨닫습니다. 각기 다른 연인이 있었지만 그들은 만들어가는 인연이 아닌 처음부터 정해진 인연인 소울메이트, 영혼의 단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이킥의 지훈과 세경 역시 마음을 깨닫게 된것은 불과 죽음 몇분 전의 일입니다만 그 짧은 순간에도 이지훈은 큰 감정의 동요를 겪습니다. 서서히 스며들어온 감정은 어느순간 폭풍처럼 깨닫게 되고야 말지요. 하지만 이런 운명의 인연이 편안하게 이어질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서있는 계급의 간격이 너무나 높고 길었기 때문이겠죠. 사다리 위의 이지훈과 사다리 아래의 신세경. 하이킥은 원래 8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 의사가 있었던 시트콤입니다. 사실 80년대였다면 세경의 식모 설정이나 이지훈과의 계급의 격차에 대해 시청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편한 면이 있었겠죠.
지훈은 분명 순수하지만 또 순수하기에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졸에 식모살이하는 세경에게 상처를 줄수밖에 없다면 시작조차 하지 말라는 말 역시 친구에게 애둘러 스스로에게 경고할만큼 겁이 많은 남자입니다. 세경에게 끊임 없이 사다리 위로 올라오라고 강요는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거나 심지어 사다리를 부수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겁쟁이이죠. 이것은 김병욱 피디 스스로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자학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볼때에 이지훈은 바로 김병욱 피디 자신 같거든요. 그래서 이지훈의 시점은 철저히 가려져있던 거겠죠. 피디 자신이니까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지훈이 선물한 책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처럼 비로소 마지막에야 지훈은 감정의 자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자각과 동시에 사다리가 놓인 세계를 파괴하고 하나가 되지만 정말 신에게 날아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네요.
마지막의 순간에 세경은 자신의 감정을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만 지훈은 그 말을 듣고만 있습니다. "미안하다." 평소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는 지훈이 페이스가 흔들리며 처음으로 무너져내린 얼굴로 말한 이 미안하다라는 고백은 오로지 사다리 위로 세경을 올라오게하는 방법 밖에 몰랐던 바보 같은 자신의 사랑법이 세경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게 했는지 그리고 이미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던 세경과의 인연에 대한 감정의 벅참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지훈은 오히려 연인인 정음에게는 서운대생인 것을 감춰줄 정도로 학벌과 격차에 대한 큰 종용은 없으면서도 세경에겐 자신의 페이스가 흔들릴 정도로 지나친 간섭을 하며 "내 사골 끓일 시간을 보상 받았으면 좋겠어." 라고 자신의 곁으로 다가올 것을 요구합니다. 세경과 사겨보고 싶어하는 친구에게 중졸이며 식모살이 하는 불쌍한 애라며 지나칠정도로 화를 냈던 지훈은 결국 "책임질수 없으면 시작도 하지마!" 라고 경고를 합니다. 물론 이 경고는 스스로에게 하는 잠재적인 경고였음이 드러났지요. 물론 세경 역시 이런 지훈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훈이 올라서있는 사다리의 끝으로 가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세경의 고백처럼 자신이 사다리 위로 올라선다면 자신의 아래에 또 다른 사다리 밑에서 자신을 바라볼 누군가가 있을짖도 모른다는 말을 하며 그것을 거부합니다. 이런 세경의 상처와 자신의 감정을 마지막에서야 자각한 지훈에게 있어 서로의 마음이 쌍방향이라는 것을 깨닳았을때 그들은 비로소 사다리가 필요 없이 똑같은 곳에 마주선 인연이 됩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이지요.
사실 저는 연인 사이의 감정이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비관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과 하이킥의 선택이 옳았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해피엔딩을 좋아하며 등장인물을 무책임하게 죽이는 것은 일종의 살인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배신감도 어느정도는 비슷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애초 기획의도가 산골소녀의 성장기였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엔딩일테죠. 더욱이 고생만 하다 죽은 세경이를 생각하면 세경에게 행복이란 이지훈을 해바라기하는 감정 외엔 없냐는 생각에 같이 항의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랑도 있구나 라는 생각 역시 듭니다. 굳이 연인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순간 폭풍처럼 밀려와 깨닫고 마는 1분 1초의 감정이라도 그것이 전부가 될수 있는 기막힌 인연. 어떠십니까?
덧.
하이킥의 지훈 세경에 대한 복선은 마지막회까지 존재합니다. 항상 불꺼진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불을 켜놓고 자신을 위해 사골을 끓이던 세경의 부재에 세경이 있는 방 앞에서 서성이는 지훈과 역시 잠 못들고 일어나 앉는 세경, 지훈이 선물한 달라가 들어있던 데미안이라는 책은 유명한 "새는 알에서 깨어난다" 라는 구절로 지훈의 감정의 자각의 실마리를 던져두고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 하이킥의 세경과 지훈의 거부할수 없는 인연의 실마리는 65회의 정말 뜬금 없는 장면이었던 지훈이 세경에게 붉은 노끈을 찾아달라는 장면인것 같습니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세경과 준혁의 팬티 에피소드였는데요. 저 장면은 정말 장면 자체로만 놓고 보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장면이었거든요. 정말 정해진 인연은 붉은 실로 엮여있다고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