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의 귀환(사43:14-21)
바벨론 포로의 귀환(사43:14-21)
하나님이 「世俗化」라는 바벨론에 포로되어 재림의 소망을 잃어버린 우리 마음을 해방시켜주신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처럼 우리도 소신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음으로 돌이켜 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교회에 약속하신 ‘회복의 은총’을 베푸시는 연장 선상에 있는 크신 은총이다. .)
바벨론에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었다. 바벨론에 포로되어 끌려간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귀족이거나 지도자급이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비록 바벨론에서 포로된 신세로 살아가지만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하려고 몸부림쳤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게 하였다. 이교도들이 지배하는 바벨론의 제도가, 정치가, 문화와 관습이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섬기도록 용납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했지만 엉망이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징계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키지 않은 범죄에 대한 심판이요 징계였다. 하나님이 언도를 내리신 것은 70년이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은 안식년과 희년의 총계와 같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하나님의 뻬맛� 지키지 않으면 강제로 지키게 하신다.
국방부 시계도 돌아가고 바벨론의 시계도 돌아간다. 그러나 70년은 긴 시간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끌려가기 이전에 선지자 이사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 것을 예언하게 하셨다. 본문이 그 내용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그 후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의 때가 되어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주도한 예루살렘의 귀환으로 성취되었다.
오늘 선포하시는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바벨론은 세속화된 성도의 의식구조와 삶의 자리를 말한다. 세속화는 우리로 불신앙에 빠져서 오직 이성과 감성으로만 살게 하며, 탐욕에 빠져 불평과 원망이 일상생활이 되게하며, 음란한 세대에 동화되어 이 땅의 썩어지고 없어질 것에 목매어 살게 하는 영적 세력이다. 세속화에 함몰되어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신앙생활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세계가 ‘30년 단기 빙하기’를 맞고 있다는 주장도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도 방하기를 맞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추구해온 것이 하나님의 뜻과 달랐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에 우리가 맞고 있는 교회의 참담한 현실이다. 이성희 목사가 2010년 강남지역노회연합회 신년하례회에서 축사를 하는 가운데 한 말. “한국에서 봉사를 제일 많이 하는 종교는 기독교요, 전도를 제일 많이 하는 종교도 기독교인데 열매는 그렇지를 못하다.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10명을 모아놓고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경험하게 하였더니 6명이 천주교를, 3명이 불교를 1명만이 기독교를 선택한 실험을 보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어떻게 이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다.” 70-80년대 한국교회는 경이적인 성장을 하였다. 지금의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은 그 때 개척하였거나 성장한 교회들이다. 그러나 앞으로 당분간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참담한 현실을 맞게 되었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교회의 세속화에 있다.
지금과 같이 세속화된 교회의 상황에서 재림의 소망은 설 자리가 없다. 주님의 재림은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화급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라는 바벨론에 포로되어 기진맥진하고 있다. 주님은 다시 오시는데 주님을 맞이할 교회와 성도들은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마치 내일 시험을 보는데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다. 어떻게 할 것인가? 참담하다. 그러나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길을 열고, 우리로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세속화라는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만날 수 있는 시온으로 우리를 귀환하게 하신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신다. 세속화에서 벗어나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신다.
1. 하나님이 친히 교회와 성도를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여주신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그럴 수 있는 힘도, 지도력도, 기회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70년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하나님이 친히 주도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세속화에 포로되어 있는 것을 해방시켜 원래의 은혜의 자리로 돌이키게 하신다.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이스라엘을 내어 보내도록 바벨론을 다루신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14,16,17)
바벨론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붙잡고있는 이스라엘을 놓아주도록 타격하신다. 세속화로 교회와 성도를 속박하는 사탄을 하나님이 친히 타격하신다. 사탄의 교회와 성도를 세속화로 묶어 두려는 음모를 분쇄하고 교회를 해방시켜주신다. 사탄은 그 음모가 발각되고 무산되어 타격을 받지만 완전히 망하는 것은 아니다. 무저갱에 들어가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기 까지 사탄은 존재하고 역사하도록 하나님이 허용하신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놓아줄 수 밖에 없다. 사탄은 그동안 세속화로 얽매어 두었던 교회를 놔줄 수 밖에 없다.
바벨론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만 바벨론에서 나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세속화에 잡혀있는 교회와 성도 가운데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교회와 성도만을 하나님이 자유케하여 주신다. 평소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이 세속화에서 벗어나도록 역사하신다.
교회와 성도를 세속화에서 벗어나도록 해방시켜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15)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의 거룩함을 회복하게 하심으로 세속화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하나님이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여주신다. 새로운 마음을 넣어주심으로 세속화를 벗어버리게 하신다. 하나님이 친히 성도의 마음을 다스리심으로 세속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신다. 지금까지 과거에 없던 일을 행하실 것이다. 세속화에서 벗어나도록 친히 주도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가 세속화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다. 하나님이 주도하시기에 우리는 기대해야 한다.
2. 세속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도가 할 일이 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하심이지만 그에 부응하여 성도가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귀환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지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나름대로 역할을 잘 감당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지도에 따랐고 협력하였다. 세속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해야 하나님이 세속화에서 벗어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다. 세속화라는 바벨론에서 벗어나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가 힘써 행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과거의 구습을 단절해야 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18)
바벨론포로생활의 과거와 단절을 해야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신다.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에 구습을 형성하였다. 비록 포로생활이지만 나름으로 그 생활에 적응되어 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포로생활이지만 습관화 되어버린 생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세속화되어버린 생활과 사고는 신앙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속에서 오래 살다보니 세속화되어 사는 것이 편하고 바른 것 같이 여겨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속화되어 살던 과거와 단호하게 단절할 것을 요구하신다.
과거와 단절하는 것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4:22)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다. 구습은 이전부터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습관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습관은 기억과 생각을 통하여 지속된다. 그래서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는 못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속화되어 살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으면 그 기억이 내 언행심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아야 하나님이 내 마음에 새로운 일을 행하실 수 있다. 잊어버리는 것도 주님의 은혜다. 주님이 은혜를 주셔야 이전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므로 기억을 치유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의 상처받고 오염된 기억을 치유하여 주신다.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세속화되어 살던 시절의 일을 생각하면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떠나온 애굽으로 돌아가려했던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은 작태를 보이게 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당장의 생활이 힘들고 고단하자 일단의 불신앙적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회중을 충동질하였다. 애굽에서 종노릇하지만 근근히라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기 때문에 그 때를 그리워하며 돌아가려고 한 것이다.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으면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갈 수 없다. 의지적으로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을 바라보며 힘든 광야생활을 감당해야 한다. 오직 오늘에 충실하며 소망의 내일을 기대하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 심령에 새로운 일을 행하실 수 있다.
과거와 단절하는 것은 금단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힘들고 어지럽다. 그래도 과거와 단절하리라 결단하고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할 일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은혜로 인이 박힌 세속화된 기억과 생각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여주신다.
2)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알고 기대해야 한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니라”(19.20)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를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새 일을 행하셨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신다.
광야에는 길이 없다. 길이 없는 광야에 하나님이 길을 내신다. 길은 소통이다. 하나님과 소통이 막혀 불통으로 고통당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내신다는 선포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다. 우리는 길 되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 소통하였다. 그런데 세속화된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하나님과의 소통이 어렵게 되었다.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막혀 있는 우리 심령에 길을 뚫어주신다.
하나님이 우리 심령에 시온의 대로를 내신다. 시온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그래서 시온의 대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다. 은혜를 상실하고 하나님과 소통의 길을 잃어버린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길이 구축된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이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면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은혜를 회복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 심령에 재림의 대로를 내신다. 재림의 대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는 길이다. 오늘 우리는 재림의 소망을 상실한 체 세상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재림을 교리로는 믿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재림을 믿는다 해도 아주 먼 미래에 오시리라고 간주하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재림의 소망이 있을 자리가 없다. 하나님이 재림의 소망을 상실한 성도에게 재림의 소망을 심어주신다. 재림의 소망을 심어주시면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살게 된다.
하나님이 사막에 강을 내신다.
하나님이 사막에 내시는 강은 생명수가 흘러오는 통로이다. 우리 심령에 생명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다. 우리 마음에 생명수가 흐르는 통로를 내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옥토로 만들어 주신다. 우리 마음이 항시 물이 흐르는 시냇가(시1:3)의 주변과 같은 옥토가 된다. 옥토는 복음이나 말씀을 심을 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비옥한 땅이다. 씨를 뿌려도 버려진 황무지와 같이 열매를 맺지 못하던 우리 마음이 비옥한 옥토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음밭으로 개간되고 가꾸어지는 것이다.
생명회복의 역사를 일으켜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겔47:9) 죽은 심령이나 진배없던 우리 마음을 주님이 다시 살리시고 일으켜 주신다. 그래서 살아있는 교회가 되고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지상명령과 문화사명을 감당하며 살게 된다.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게 된다.
천국에서 흐를 생명수의 강이 흐르게 될 것이다. “또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천국에서 흐르게 될 생명수의 강이 우리 심령에 흐르게 됨으로 어떤 유혹도 물리치고 천성을 향해 달려가게 하신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신다.
말씀이 없어 기갈인 이 세대의 성도들에게 세상이라는 누룩이 섞이지 않은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경험하게 하신다. 그래서 모든 영적인 갈증이 해갈되고, 만족함을 누리며 살게 한다.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기진한 성도들이 새 힘을 얻으며 기사회생한다. 새 힘을 얻어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게 한다. 좁은 길, 생명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게 한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게 한다. 승리의 면류관을 얻게 한다. 열매 없는 성도가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나아가 세상과 마귀와 거친 환경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다.
3)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양하게 하려 함이니라”(21)
바벨론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들이 이전에 막연하게 알던 하나님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와 같이 세속화의 속박에서 해방된 성도가 재림의 소망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옥토로 마음을 기경하여 주신 하나님께 찬양드린다. 새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드린다. 찬양은 새노래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이시기에 그 누구도 이 찬양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찬양도 능력을 더해 가고 깊이를 더 해 간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 임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 나라이다.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도 마음에서 되는 일이요, 예루살렘에 귀환하는 것도 마음에서 되는 일이다. 하나님이 바벨론에 포로된 우리 마음, 즉 세속화된 우리 마음에 새 일을 행하신다. 세속화된 마음이 은혜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 심령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도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고 기다려야 한다.
주님은 다시 오신다. 주님은 속히 오신다. 지금 우리 심령상태로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에 귀환한 것처럼 우리도 세속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귀환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한 것처럼 우리도 심령성전을 재건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며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