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섬 2011. 10. 26. 08:35

 

박완서, 김용택, 안도현, 이순원, 구효서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0인 작가들이 진솔한 자기반성의 이야기를 통해 반성의 의미와 삶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책으로, 원로작가에서부터 중견작가, 신인작가에 이르기까지 국내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무한질주 같은 삶에서 쉼표와 같은 반성의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작품집은 작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나가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예의, 시대에 대한 통찰적인 시각, 그리고 세상에 대한 깊은 관조 등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여러 작가들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사랑, 그리고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들의 학교길 산길 이슬을 털어주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 고비고비마다에 어머니의 이슬털이가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이순원의 '예술가 아들의 삶', 절제와 검소함, 철저한 자기억제만으로 평생의 삶을 꾸려온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다룬 김이은의 '사소한 계란말이의 기억' 외에도 차현숙의 '엄마의 나쁜 딸', 서석화의 '어머니의 문안 전화'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어머니의 문안 전화 - 서석화
예술가 아들의 삶 - 이순원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 박완서
집착과 울컥으로부터의 도피 - 이재무
태환이 형, 진짜 미안해! - 김용택
언제 한번 봐 - 이승우
아이 - 구효서
반성은 자기 돌아봄이다 - 장석주
이까짓 풀 정도야 - 안도현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 - 서하진
내 기억 속의 음화 - 은미희
세상을 바로 살기 위한 여섯 가지 반성 - 고운기
엄마의 나쁜 딸 - 차현숙
사소한 계란말이의 기억 - 김이은
너무나 안전했던 대구 - 우광훈
일곱 가지 새똥 같은 이야기 - 김규나
오르한 파묵의 바늘 - 공애린
휴강한 죄 - 김종광
상수리나무 [역?]를 찾아서 - 고형렬
욕먹고 나면 더 잘하게 돼 - 권태현

다음날 아침에 요양원 원장 사모님이 어머니 핸드폰과 충전기를 가져오셨다.
“사실 그저께부터 기침이 심하셨는데 그냥 감기려니 했지요. 그런데 어제 보니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자력으론 호흡이 불가능해 얼굴이 시퍼렇게 뜨며 붓는데 이러다 정말 일 당하는 건 아닐까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으로 모시고 왔는데 한사코 따님한테는 알리지 말라고 하셔서…….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올라가시는 걸 보고나서야 몰래 전화를 드린 거예요. 상태가 위중하니 보호자를 빨리 부르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도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요. 어제 늦게 제가 돌아간다고 인사를 하니 내일 핸드폰을 꼭 갖다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딸한테 전화를 못하면 걱정할 거라고요. 벌써 이틀째 전화를 못했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겠냐 하시면서요. 그래서 가져왔어요.”
그래서 이틀 동안 어머니의 문안 전화가 오지 않았었구나. 만약 내가 전화를 해봤더라면 조금이라도 상태가 덜 나빴을 때 어떤 조치라도 취해졌을 텐데……. 겁이 나서, 무서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뒤에 맞고 싶어서 나는 핸드폰을 들지 못했다.
어머니의 핸드폰을 받아 폴더를 열어 통화 버튼을 눌러본 순간 나는 핸드폰을 가슴에 안은 채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온통 내 이름뿐인 통화 내역. 하루 한 번 아침 10시에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낙이었을 어머니의 가난한 시간이 바로 내 눈 앞에서 떨고 있었다.
사모님이 돌아간 뒤 나는 중환자 보호자실에서 내 핸드폰과 어머니 핸드폰을 동시에 열어보았다. 우리 엄마라는 이름 외에 다양한 이름으로 걸려오고 또 내가 건 통화 내역이 저장된 내 핸드폰과, 열흘 전에도 그 전에도 내 이름으로만 발신된 어머니 핸드폰. 하루 한 번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하루치의 안부를 주고받았다는 안도감과 해방감 속에서 아침 10시 이후에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는 자각이 뼈아프게 밀려왔다.
어머니 핸드폰이 내 이름으로 개설된 거라 요금도 당연히 내가 내는 것을 알고 계신 탓에 아침에 한 번 전화를 하시면서도, 행여 요금이 많이 나올까 걱정하시던 어머니.
“오늘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내 딸 목소리는 들어야 살 것 같아서 또 했다.”
“안 하기는 왜 안 해요? 엄마 전화 받아야 나도 살 수 있는데?”
“통화료 많이 나올까 봐 그러지.”
“그런 걱정 안 해도 돼요. 하루 몇 번이라도 엄마 하고 싶을 때 해.”
“그래도 그건 안 돼지. 하고 싶을 때마다 하면 하루 열 번은 해야 될 거다, 아마.”
- <어머니의 문안 전화> 중에서 - 알라딘
“너는 뒤따라오너라.”
거기에서 내게 가방을 넘겨준 다음 어머니는 두 발과 지게 작대기를 이용해 내가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몸뻬 자락이 이내 아침 이슬에 흥건히 젖었다. 어머니는 발로 이슬을 털고, 작대기로 이슬을 털었다. 그렇다고 뒤따라가는 내 교복 바지가 안 젖는 것도 아니었다. 신작로까지 10분이면 넘을 산길을 20분도 더 걸려 넘었다. 어머니의 옷도 그 뒤를 따라간 내 옷도 흠뻑 젖었다. 거기서 어머니는 품속에 넣어온 새 신발을 내게 갈아 신겼다.
“앞으로는 매일 털어주마. 그러니 이 길로 학교를 가. 다른 데로 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울지는 않았지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나 혼자 갈 테니까.”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어머니가 늘 이슬을 털어주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날 가끔 그렇게 내 학교 길의 이슬을 털어주셨다. 또 새벽처럼 일어나 먼저 이슬을 털어놓고 오실 때도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털어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올해 어머니는 일흔셋이시다.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 살아온 길 고비고비마다 이슬털이를 해주셨다. 아마 그렇게 털어내주신 이슬만 모아도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오래오래 사세요, 어머니.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어머니가 털어주시던 그 이슬털이의 의미를 깨달았다.
- <예술가 아들의 삶> 중에서 - 알라딘
지어먹은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오랫동안 지켜온 절약정신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음식물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어려서부터 농사짓기의 어려움과, 곡식으로 된 것은 쉰밥도 버리지 못하고 씻어먹는 걸 보아온 데서 비롯된 원초적인 죄의식 때문일 터이다. 내 몫은 남의 집에서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우고, 손님을 치르고 남은 음식도 걷어두었다가 몇 날 며칠을 그것만 먹다가 다 먹은 후에야 새 음식을 만드는 버릇 때문에 자식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다. 엄마 몸이 쓰레기통인 줄 아느냐는 혹독한 소리까지 들었다. 자식들이 그러건 말건 그 버릇만은 좋은 버릇인 줄 알았는데 이참에 고쳐야 할 것 같다. 화면이 그 끔찍함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준 탓도 있겠지만 만두 속 만드는 과정을 보고 욕지기가 치밀면서 저런 사람 중 대표적인 한 명 정도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살의에 가까운 혐오감을 느꼈다. 그리고 먹는 거라면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이 늙은이를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창피스러운 나머지 죽는 날이나 기다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음식은 지딱지딱 버리고 새로 사먹는 게 젊은 사람 마음에 드는 일도 되고 농사짓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도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 자본주의 공부는 끝도 없어라.
-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중에서 - 알라딘

 

 

 

반성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신과의 약속이다

김용택, 박완서, 안도현, 이순원 외 우리 시대 대표작가들이 전하는
진솔한 반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았던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집과 독선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지는 2010년의 끝자락에 『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박완서, 김용택, 안도현, 이순원, 구효서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0인 작가들이 진솔한 자기반성의 이야기를 통해 반성의 의미와 삶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책으로, 원로작가에서부터 중견작가, 신인작가에 이르기까지 국내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어, 세대간의 단절이 문제시되는 이때에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담고 있다. 이번 작품집은 작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나가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예의, 시대에 대한 통찰적인 시각, 그리고 세상에 대한 깊은 관조 등을 담고 있다. 다채로운 삶의 무늬를 통한 따뜻한 성찰의 이야기들은 혼란의 일상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상처주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한 깨달음의 시간을 갖고, 자기 상실의 시대에 독자들에게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가슴 뭉클한 사랑, 관계가 빚어낸 상처와 치유, 그리고 삶에 대한 겸손…
무한질주 같은 삶에서 쉼표와 같은 반성의 이야기들


모든 시작과 끝은 반성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반성이 새로운 시작을 부르고, 반성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문학가들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그들의 반성은 작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과 감동 그리고 깨달음을 선사한다. 그만큼 작가들에게 있어서 반성과 성찰은 중요한 창작의 과정이자 새로운 세계로의 승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작가들의 진정 어린 가슴 깊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여러 작가들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사랑, 그리고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들의 학교길 산길 이슬을 털어주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 고비고비마다에 어머니의 이슬털이가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작품 「예술가 아들의 삶」(이순원), 뇌졸중으로 요양원에 계신 엄마의 하루 일과의 전부가 아침 10시 딸에게 전화거는 것이었음을 엄마가 쓰러지신 후에나 알게 됨으로써 사랑하는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 「어머니의 문안 전화」(서석화), 절제와 검소함, 철저한 자기억제만으로 蜘萱� 삶을 꾸려온 엄마에 대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