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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入春大吉

꿈꾸는 섬 2009. 2. 4. 10:58

 

 

 

입춘(立春)

24절기(節氣)의 첫째.

예부터 입춘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한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했다.

소를 보살피고, 재거름을 부지런히 재워두고, 뽕나무밭에는 오줌을 주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인분으로 두엄을 만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년 농사의 시작이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또 이날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입춘 때 받아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입춘한파'니,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고 간혹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봄을 시샘하기도 한다.

 

立春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정월(正月) 절기(節氣; 매달 상순에 드는 절기)로 태양이 황경(黃經; 춘분점에서부터 황도를 따라 잰 천체의 각도 거리) 315도에 위치할 시기이고 양력(陽曆)으로는 2월 4일경이다. 입춘 전날은 절분(節分)으로 불리며 철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해넘이'라고도 불리면서 이 날밤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다.

 

특히 입춘날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등의 입춘방(立春榜)을 문에 붙이고, 입춘절식(立春節食)이라 해서 고유의 절기 때 먹는 음식인 절식(節食)으로 입춘날에 먹는 햇나물 무침이 있다.

유래는 경기도 내의 산이 많은 6개의 고을{양평(陽平),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連川)}에서 움파{동총(冬蔥)}, 멧갓, 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 임금께 진상하고 궁궐에서 겨자와 함께 무쳐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水刺)상에 올렸다. 이는 겨우내 결핍된 신선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에서도 이를 본받아 입춘절식(立春節食)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

 

옛 문헌에 입춘 기간에는 동풍(東風)이 불어 언 땅이 녹고, 동면(冬眠)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어류(魚類)가 얼음 밑을 다닌다고 했다.

양력 2월 4일경, 태양이 시황경 315°에 왔을 때를 입춘 입기일로 하여 이후 약 15일간이 입춘기간에 해당한다.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로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는 하지만, 추위는 아직도 강하다.

그러나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②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③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잡절(雜節)은 입춘날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밭에 씨앗뿌리기가 시작되는 88야(夜), 태풍시기인 210일, 220일 등은 각각 입춘날로부터 88일, 210일, 220일째 날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입춘첩(立春帖)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궐(大闕)에서는 설날에 문신(文臣)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신년축시)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였는데,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입춘첩을 붙이고 새봄을 송축(頌祝)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白福來)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써붙이기 시작한 것은 입춘에 ‘건양다경(建陽多慶)’도 써 붙였는데 이는 고종황제 즉위 이후'건양'이 연호로 사용된 다음부터 써 붙였던 것이니 100여년 전 부터나 써 붙였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입춘굿

제주도에서 입춘날에 베풀어지던 굿놀이로,입춘춘경이라고도 한다. 신년 풍농제이다. 지금은 볼 수 없으나 1960~1970년 전만 해도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굿놀이로 1920년경 전승이 중단되었다. 한 해를 24절기로 나눈 첫번째 절기인 입춘날은 민속적으로 새 철이 드는 날이라 해서 새해의 모든 생활이 이날부터 시작된다. 이날에 큰 의미를 두고 온 섬 주민들은 관 주관 아래 풍년을 기원하는 굿놀이를 한다. 굿거리는 세경놀이와 함께 농사짓는 과정을 흉내냄으로써 풍농을 기원하였다.

 

보리뿌리점

농경의례와 관련된 정초의 놀이로, 맥근점(麥根占)이라고도 한다. 농작물의 상태를 통하여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곡물점(穀物占)의 하나이다. 주로 경기도 지방에서 입춘(立春)날 농가에서 보리의 뿌리를 관찰하여 그 성장 상태를 보고 그해 농작물의 풍년과 흉년을 미리 점치는 점법이다.

이날 농가에서는 보리뿌리를 파보고 뿌리가 한 가닥으로 되어 있으면 흉작, 두 가닥으로 되어 있으면 평년작, 세 가닥으로 되어 있으면 풍작이 될 것으로 믿었다. 《열양세시기》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한국의 주곡이었던 시절 보리는 중요한 식량이었다. 그러나 그 양이 넉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손수 경작한 쌀을 농사에 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거의 팔아야 했고, 전쟁 때는 공출로 내놓아야 했다. 따라서 3∼4월경 농가에서는 식량이 바닥나서 보리가 다 여물 때까지 나무 껍질이나 나물을 캐어다 연명을 하곤 했다.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 한다.

입춘 때의 이러한 관습은 지금도 일부 나이 든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주로 입춘에 행해졌던 것은 이유는 24절기 중 첫 절기인 입춘이 한 해 농사의 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춘에는 각 지방에서 보리뿌리점 외에 입춘점·보리할매점 등 다른 농경의례도 성행했다.

또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수수깡을 잘라서 보리 모양을 만든 뒤 이것을 거름 속에 꽂아 놓았다가 다음날 대보름 아침에 보리를 거두어 태우고 난 재를 봄에 보리 갈 때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 그해 보리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목우놀이

함경도 지방에서 입춘이 되면 나무로 소를 만들어 관아(官衙)로부터 민가(民家)까지 끌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풍속이다. 이는 옛날 중국에서 흙으로 소를 만들어 내보내던 풍속을 모방한 것이고,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입춘절식 (立春節食)

한국 고유의 절식으로, 입춘일에 만들어 먹는 햇나물무침 등으로, 입춘일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등 좋은 뜻의 글씨를 붓으로 써서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고, 기협 6읍(畿峽六邑:경기에서 산이 많은 楊平·砥平·抱川·加平·朔寧·漣川의 여섯 고을)에서는 움파·멧갓·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어 임금님께 진상하였으며,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 요리인 오신반(五辛盤)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이것을 본보기로 민간에서는 입춘일에는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서 입춘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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