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
행11:19~24
1. 무명의 그리스도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누구를, 어떤 사람을 주목하시고,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 인생을 축복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시편33:13~15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생을 보시고 감찰하시고 하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마음의 동기와 행동을 달아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고, 나쁜 쪽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종의 하나님께서 째려보시는 사람도 있고, 흐뭇한 기쁨의 미소를 지으시며 바라보시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이 주목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뭔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있고, 무대 전면에 나서는 외모가 화려한 사람들을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외양을 따라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과 이들의 사역에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최초의 이방교회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19절 20절에 보면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진 과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시작된 핍박과 시련으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이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그 당시 로마 대제국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안디옥. 그런데 이 안디옥이라고 하는 중요한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나 요한 같은 거물급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역사는 이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이 어쩌면 세상적으로 볼 때 별볼일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고전1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큰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들어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높이셔서 존귀하게 하시는 일을 즐겨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역시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어떤 사람을 외적인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별로 가진 것이 없고, 현재의 환경이나 여건이 별볼일 없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시고, 그렇게 판단한 여러분은 낮추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높아지는 것도 하루 아침이고, 추락하는 것도 하루 아침입니다. 하루아침에 추락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연예들도 그렇고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비유를 통해 반복적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잔치 자리에서 상석에 앉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번 높아진 자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기 때문에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밑으로 떨어지는 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낮아진 자는 이제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잔치의 상석에 앉을 것을 탐하지 말고 오히려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은데 앉았다가 나중에 낮은 데로 가라고 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되느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 겸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내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삶 가운데에도 해당되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교회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외적인 어떤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낮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뿐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현재 여러분의 약한 모습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행사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니까 별볼일 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것 역시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만 주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직분자들의 인생만 들어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기 잘 나가는 강남의 사랑의 교회 성도들만 사용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백성들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지극히 작은 자들의 섬김과 헌신을 사용하셔서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히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섬기는 그러한 헌신을 하나님은 더 기뻐여기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능력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입니다. 소수의 별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통해 수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과 함께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다 우리들도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속에 속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세상적으로 또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자리에 있지 않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목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과정을 한 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 아브람의 가정적 배경이 좋았습니까? 아니면 학벌이 좋았습니까? 그 당시 아브람은 사람들에게 전혀 주목을 받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곳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조차도 세상은 몰랐습니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그 당시 매스컴이 있었다고 해도 전혀 보도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그를 하나님은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300명으로 수십만의 미디안 족속을 물리친 기드온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기 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한 소시민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거의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함께 하신다는 이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절을 통해 한 가지 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주의 손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의 인생이 형통한 인생입니까? 어떤 사람이 전도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봉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고 유능해도,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할 지라도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손이 문을 열면 대로가 열리는 것이고, 한 번 막으시면 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편31:15에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구원과 죽고 사는 것과 형통함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7:13~14은 형통과 곤고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전9:1, 11)
그러기에 여러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이 있어서 우리 개인의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깊히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큰 차이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그 하나님의 손을 의식하고, 그 하나님의 손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축복된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주목하는 사람의 특징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20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명의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당신의 백성인 한 주목하시고, 함께 하시고, 들어사용하신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사용하시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20절을 통해 살펴본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은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고난이 있고 시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흩어져서 자신들이 살고 삶의 영역 속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외적인 조건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순종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주의 손의 역사가 임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 번째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나바를 통해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준비된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24절에 보니까 바나바를 통해 큰 무리가 주께 더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22절에 보는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소문 때문에 그 내막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 바나바를 파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23절은 그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역을 하였는지를 말씀하며, 24절은 그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역사하는 지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영적인 분별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 세상의 어떤 소유로 인해 기뻐합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의 존재의 변화로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사모하고, 그것을 보고 경험하며,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동시에 꼭 여러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나타날 때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들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현재적인 삶에서 영적인 긴장을 가지고 죄의 유혹에서 강팍케 됨을 면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2~14)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바나바의 인품과 성품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는 것은 그의 영적인 상태와 영성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선한 성품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고, 뜨거운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주목하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떤 능력이나 재능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할 가망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조건들과 기반이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적인 조건과 기반은 약할 지라도, 인격적으로 겸손하고 준비된 사람은, 또한 영적으로 무장하고 준비된 사람은 바나바의 경우처럼 놀랍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바나바와 같이 자신을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준비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한 사람 바나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며,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처럼, 여러분 모두가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준비시켜 청년부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여러분이 있는 곳을 변화시키며,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된 능력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11:19~24
1. 무명의 그리스도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누구를, 어떤 사람을 주목하시고,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 인생을 축복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시편33:13~15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생을 보시고 감찰하시고 하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마음의 동기와 행동을 달아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고, 나쁜 쪽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종의 하나님께서 째려보시는 사람도 있고, 흐뭇한 기쁨의 미소를 지으시며 바라보시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이 주목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뭔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있고, 무대 전면에 나서는 외모가 화려한 사람들을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외양을 따라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과 이들의 사역에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최초의 이방교회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19절 20절에 보면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진 과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시작된 핍박과 시련으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이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그 당시 로마 대제국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안디옥. 그런데 이 안디옥이라고 하는 중요한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나 요한 같은 거물급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역사는 이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이 어쩌면 세상적으로 볼 때 별볼일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고전1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큰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들어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높이셔서 존귀하게 하시는 일을 즐겨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역시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어떤 사람을 외적인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별로 가진 것이 없고, 현재의 환경이나 여건이 별볼일 없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시고, 그렇게 판단한 여러분은 낮추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높아지는 것도 하루 아침이고, 추락하는 것도 하루 아침입니다. 하루아침에 추락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연예들도 그렇고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비유를 통해 반복적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잔치 자리에서 상석에 앉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번 높아진 자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기 때문에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밑으로 떨어지는 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낮아진 자는 이제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잔치의 상석에 앉을 것을 탐하지 말고 오히려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은데 앉았다가 나중에 낮은 데로 가라고 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되느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 겸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내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삶 가운데에도 해당되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교회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외적인 어떤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낮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뿐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현재 여러분의 약한 모습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행사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니까 별볼일 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것 역시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만 주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직분자들의 인생만 들어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기 잘 나가는 강남의 사랑의 교회 성도들만 사용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백성들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지극히 작은 자들의 섬김과 헌신을 사용하셔서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히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섬기는 그러한 헌신을 하나님은 더 기뻐여기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능력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입니다. 소수의 별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통해 수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과 함께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다 우리들도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속에 속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세상적으로 또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자리에 있지 않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목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과정을 한 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 아브람의 가정적 배경이 좋았습니까? 아니면 학벌이 좋았습니까? 그 당시 아브람은 사람들에게 전혀 주목을 받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곳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조차도 세상은 몰랐습니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그 당시 매스컴이 있었다고 해도 전혀 보도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그를 하나님은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300명으로 수십만의 미디안 족속을 물리친 기드온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기 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한 소시민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거의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함께 하신다는 이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절을 통해 한 가지 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주의 손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의 인생이 형통한 인생입니까? 어떤 사람이 전도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봉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고 유능해도,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할 지라도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손이 문을 열면 대로가 열리는 것이고, 한 번 막으시면 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편31:15에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구원과 죽고 사는 것과 형통함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7:13~14은 형통과 곤고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전9:1, 11)
그러기에 여러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이 있어서 우리 개인의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깊히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큰 차이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그 하나님의 손을 의식하고, 그 하나님의 손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축복된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주목하는 사람의 특징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20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명의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당신의 백성인 한 주목하시고, 함께 하시고, 들어사용하신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사용하시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20절을 통해 살펴본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은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고난이 있고 시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흩어져서 자신들이 살고 삶의 영역 속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외적인 조건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순종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주의 손의 역사가 임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 번째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나바를 통해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준비된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24절에 보니까 바나바를 통해 큰 무리가 주께 더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22절에 보는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소문 때문에 그 내막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 바나바를 파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23절은 그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역을 하였는지를 말씀하며, 24절은 그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역사하는 지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영적인 분별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 세상의 어떤 소유로 인해 기뻐합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의 존재의 변화로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사모하고, 그것을 보고 경험하며,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동시에 꼭 여러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나타날 때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들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현재적인 삶에서 영적인 긴장을 가지고 죄의 유혹에서 강팍케 됨을 면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2~14)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바나바의 인품과 성품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는 것은 그의 영적인 상태와 영성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선한 성품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고, 뜨거운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주목하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떤 능력이나 재능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할 가망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조건들과 기반이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적인 조건과 기반은 약할 지라도, 인격적으로 겸손하고 준비된 사람은, 또한 영적으로 무장하고 준비된 사람은 바나바의 경우처럼 놀랍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바나바와 같이 자신을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준비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한 사람 바나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며,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처럼, 여러분 모두가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준비시켜 청년부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여러분이 있는 곳을 변화시키며,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된 능력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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