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10-17] 오병이어의 기적
누가복음 9:10-17
사도들이 돌아와 가지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요즘 경제가 회복되어가고 있다는 전망이 많이 보도되지만, 아직도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닌가봅니다. 그 한 예로 노동시장의 임금입니다. 요즘 노동시장의 임금이 낮아졌다고 합니다. 노동시장의 임금이 낮아진 이유는 노동인력의 수요는 적어진 반면에 노동인력의 공급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실업자가 많아지게 되면 대체로 경제는 침체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실업자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소비하는 사람들이 적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경제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임금은 사람들의 근로의욕에 저하시킵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시기에 사람들은 오류를 담고 있는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근처에도 갈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완전한 존재일 때 가능합니다. 더구나 이러한 때 좀 가지고 있는 악한 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를 이용하여 못된 짓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돈은 큰 미끼입니다. 이때가 사람들이 가장 비굴해지기 쉬운 때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되어야 할 텐데.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사회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현실에 큰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즉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한 두 사람밖에 먹을 수 없는 양, 아주 적은 양인데, 그것으로 장정 오천 명 외에 그 가족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기적은 오늘날에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기적이 오늘날도 과연 일어날까요? 아니면 예수님 당시에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던가요? 오늘날은 도저히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진실한 믿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뱃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눅 9:10-12) 예수께서 파송했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기 때문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모두 믿음이 충만할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돌아오자, 여독에 지친 그들을 한적한 곳에서 좀 쉬게 하려고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뱃새다라는 고을로 떠나셨습니다.(막 6:31) 그런데 무리가 예수께서 그곳으로 가신 줄을 알고 따라와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찾는 자들을 물리치시지 않으셨습니다. 한적한 곳에 제자들과 함께 쉬시기를 원하셨지만,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어느 덧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장정들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합하면 상당히 많은 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이니다”(눅 9:12) 열두 사도가 예수께 나아와 그들을 마을과 촌에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들이 모두 먹을 것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저녁거리를 해결하려면 마을로 가야 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빈 들에 있었기 때문에 먹을 것이 전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이런 요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엉뚱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런 요청을 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분명하게 그들이 있는 이곳은 빈 들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예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들의 처지를 모두 알고 계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니,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그들이 가진 것은 고작 한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하고, 직접 그 능력을 행사했던 그들은 인간적인 한계에 도달하자, 다시 믿음이 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분명히 뭔가 기적을 일으키실 것을 짐작 했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간혹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많이 나타나면 교만해집니다. 물론 제자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마치 자신이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금방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거룩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많이 나타날 때, 그 능력이 자신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사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습니다. 이런 자각을 항상 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의 한계에 봉착한 제자들은 예수께 먹을 것을 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인간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디선가 그것을 사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돈이 많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는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랐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을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떼어 나눠주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적은 양식을 가지고 장정 오천 명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 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조화를 부려도 해낼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사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만물의 창조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사실 저는 제자들처럼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기적은 예수님의 시대에만 한정된 사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비지 않는 쌀통과 냉장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특히 오늘날처럼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더러운 꼴도 안보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절박한 상황이 되면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이것을 증거하는 한 예화가 있습니다.
존 브렌츠는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용감한 종교 개혁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자 했던 스페인 왕 찰스 5세의 미움을 받게 되어 체포당했다.
어느 날, 스페인의 왕실 기병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 구원의 음성이 들려왔다. "존! 빨리 빵 한 조각을 갖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지붕 밑으로 숨어라."
존은 지시한 대로 마을로 내려가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다락에 몸을 숨겼다. 이후 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존은 그 다락방에서 약 14년 간 숨어 지냈다. 사실 존에게 빵 한 조각은 결코 14년 간의 양식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존은 그 곳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 브렌츠가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암탉이 한 마리씩 다락방에 올라왔다. 그러고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달걀을 하나씩 낳는 것이었다. 이 일은 14년 간 한 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그는 이 달걀을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14년이 지난 어느 날 닭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기이하게 여긴 그는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병사들이 마침내 모두 다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존은 아무 탈 없이 14년 만에 그 다락방에서 나오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이 들려 바다에 던지우리라 하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도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이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생길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에 생깁니다. 믿음이 생긴다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을 일으키실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 좋은 것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하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지금 어렵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어려운 때란 없습니다. 도리어 어려운 상황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게 체험하는 때입니다. 어려운 때가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잘 분간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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