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진리/신앙 칼럼

그릿 시냇가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꿈꾸는 섬 2008. 5. 31. 11:33

 

 열왕기상 17장 1-7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디셉 사람 엘리야가 등장한다. 그는 참으로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성경은 그가 누군지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출생지가 어디이며, 그 부모가 누구인지, 그가 자란 환경과 그가 처한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킨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마치 신비에 싸인 인물인 멜기세덱과 같다. 단지 열왕기 저자는 그를 "길르앗에 살고 있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 소개한다.

 

 그는 타락하여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고, 이스라엘백성들을 우상숭배로 몰고 가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 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1절 하)."

당시 이스라엘이 열심히 섬기는 바알은 토지의 생산력과 가축의 번식력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다. 고대 우가릿의 한 토판에 의하면 바알은 '비와 이슬의 주인'이요, 구름을 타고 다니는 '폭풍우의 신'으로도 묘사된다. 그런데 바알을 극진히 섬기는 아합 왕에 대적하여, 엘리야가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선언하는 것은 바알 신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 선포이다. 어찌 보면 엘리야의 이 말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주의 백성들을 향해, 바알이 비와 이슬을 주는 분인지 여호와가 비와 이슬을 주시는 분인지 똑똑히 알라는 경고로 볼 수 있다.

 

 이제 전쟁은 불붙었고, 엘리야와 아합의 최후 승부는 그 다음 장인 18장 갈멜산에서 결판나게 된다. 엘리야는 커다란 싸움을 앞두고 있다. 악한 아합과 이세벨을 상대로 싸워야 하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야 한다. 또한 악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엘리야는 영적인 재충전이 필요하다. 엘리야는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해 새롭게 바뀔 필요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부르신다. 우리는 그릿 시냇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가 거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릿 시냇가는 엘리야의 신앙여정에 반드시 거쳐야 할 영적인 수련의 장소이다. 거기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구비 된다. 이 시간 엘리야의 그릿 시냇가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 수련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릿 시냇가는 세속의 짐을 내려놓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즐거운 오락이 없다. 그릿 시냇가는 사람들과의 잡담이 없다. 그릿 시냇가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세상의 허상이 사라진 곳이다. 거기에는 세상의 염려와 걱정의 구름이 없으며, 내 마음을 절망과 낙심으로 짓누르는 세상의 무게가 사라진 곳이다. 거기에는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나와 주님만 계신 곳이다. 한마디로 그릿 시냇가는 세속을 멀리 한 곳이요, 내 마음 속에 묵은 세상의 때를 지우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나를 철저히 포기하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 그릿 시냇가는 내 모든 지혜를 접고, 내 모든 방법을 접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나는 어쩔 수 없기에 주님이 먹이시면 먹고, 주님이 굶기시면 굶는 곳이다. 주님이 살리시면 살고, 주님이 죽게 하시면 죽는 곳이다. 그러기에 그릿 시냇가는 내 생명을 아예 주님 손에 맡기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인간의 자아가 푹 썩는 곳이다. 그곳은 자신을 철저히 포기하고 나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바라 보는 곳이다.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서 모든 의식주를 하나님에게 의지한다. 엘리야가 할 수 있는 것은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는 은혜의 까마귀를 바라다 보는 것이다. 마치 새 새끼가 하루 종일 모이를 가지고 오는 어미 새를 사모하듯, 해바라기가 하루 종일 태양을 바라보듯, 엘리야는 하루 종일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며, 하나님을 사모한다. 그릿 시냇가는 하나님 아니면 길이 없고 구원이 없으며, 하나님만이 생명의 원천이 되심을 깊이 깨닫는 곳이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수련의 필수요소이다. 우리는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살길이 열리며, 하나님을 붙잡으면 답답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 모든 문제의 답이 있고, 하나님 안에 무궁한 사랑과 은혜의 샘이 있으며, 그 분 안에 모든 삶의 지혜가 숨어 있다.

 

 그릿 시냇가는 나의 빈 곳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는 곳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릿 시냇가가 그리 희망 적인 곳이 아니다. 그다지 안락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다. 거기에는 거할 집도 없다. 거기에는 맛있는 음식도 없다. 안락한 소파나 침대도 없다. 밤이슬에 젖은 몸을 말려줄 화로도 없다. 그러나 그릿 시냇가는 내게서 세상이 빠져 나가고 나의 아집과 욕망이 떠나가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에서 나 자신은 텅 비어 간다. 하지만, 그릿 시냇가가 내게 참된 은혜의 장소가 되는 것은 비움이 비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채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언제나 나를 돌보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인간은 부족해 봐야 하늘을 바라본다. 부족해 봐야 은혜의 까마귀를 바라본다. 부족해 봐야 내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부족해 봐야 내 생사 화복이 주님 손에 있음을 깨닫는다. 부족함은 채움의 기회이다. 그릿 시냇가에서 채움의 역사는 놀랍기만 하다. 거기서 나의 빈 곳은 그분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나의 허전함은 그분의 은혜로, 나의 뜻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채워진다. 거기서 우리는 세상을 비우고 천국으로 채우며,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운다.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 같이 그들이 삶 한 가운데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릿 시냇가가 있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던 얍복강가가 그의 그릿 시냇가였고, 요셉은 억울하게 갇힌 감옥이 그의 그릿 시냇가였으며, 모세는 양을 치던 광야가 그의 그릿 시냇가였고, 사도바울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진 아라비아 광야가 그의 그릿 시냇가였다.

그릿 시냇가는 영혼의 수련장이다.

이 수련장은 미운 오리가 백련조가 되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를 통하여 나의 투박한 자아는 영롱한 보석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번잡한 세상에서 당신의 마음이 갈피를 못잡는가? 힘들고 고달픈 세상을 살면서 당신의 영혼이 쇠잔해 하는가? 하늘의 크신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자신을 바라 보는가?

우리를 그릿 시냇가로 부르시는 주님의 손짓을 바라보자.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 영혼의 소성함을 입자.

그릿 시냇가는 바위 밑처럼 안전한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주 날개 밑처럼 평안한 곳이다.

주님이 날 지키시면 아무도 나를 해 할 수 없다.

주님이 날 지키시면 나는 안전하다.

주님이 숨기신 그릿 시냇가에서 나는 참 마음의 안식을 누린다.

오늘날 여러분의 그릿 시냇가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세속의 짐을 벗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곳은 어디나 내 영혼의 그릿 시냇가가 아니겠는가?

그곳은 아름다운 빛이 비추고 나뭇잎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산책로일 수도 있다. 그곳은 사람이 붐비는 광장 한 가운데 일 수도 있다. 그곳은 내가 아파 누워 눈물 흘리는 병상일 수도 있다.그곳은 간절히 기도하는 어두 컴컴한 골방일 수도 있다.

 

 그릿 시냇가는 주님과 내가 만나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분명 내 영이 새롭게 재충전되는 곳이다. 그릿 시냇가는 분명 하늘의 은총의 빛이 강렬히 내리쬐는 곳이다. 우리 모두 그릿 시냇가를 사모하며 그릿 시냇가로 나아가자. 그곳에서 예비된 하늘의 은혜를 누리자. 그릿 시냇가에서 주님 기뻐하시는 참된 경건의 열매를 맺자.  

주님은 언제나 내 영혼의 평강 되시니.  [e-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