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진리/신앙 칼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

꿈꾸는 섬 2006. 7. 30. 20:13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 (빌 3:1~11)
설교 : 김태환

빌립보서의 주제는 복음을 봉사하는 삶입니다. 빌립보서가 증거하는 복음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며 하나님과 동등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됭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을 복종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주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그 발에 꿇어 복종케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곧 복종하심을 통해서 영광과 존귀를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빌립보서가 증거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 때문에, 전에 이방인이었고, 하나님 없이 살았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복음을 봉사하는 하늘 시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인되시고 생명되시며 전부가 되신 사랑하고 사모하는 주님을 위하여 행한 봉사의 삶과 또한 지금도, 앞으로도 행하려는 봉사의 삶을 본으로 제시하며 빌립보 교회에 너희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복음을 봉사하는 합당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고 그를 섬김의 대상으로 아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행하는 삶이며,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삶입니다. 부유한 중에 있든지 빈궁한 중에 있든지, 평안한 중에 있든지, 고난에 직면에 있든지,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기쁨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빌립보서에는 바울 자신이 복음을 봉사하는 기쁨과, 빌립보 교회가 행한 일로 기뻐하는 기쁨과, 빌립보 교회 너희들이 기쁨으로 복음을 봉사하라는 권면등 기쁨에 관한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보서가 우리에게 증거하는 기쁨은 복음으로 인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나는 곤고하고, 목숨이 위태롭고, 가난하며, 배고프지만 복음의 진보와 확장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동역자들의 삶 때문에, 복음을 봉사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로 인한 기쁨입니다. 참으로, 복음을 합당하게 봉사하는 일로 인하여 교회 안에 기쁨이 충만하고, 복음을 봉사하는 일로 감사와 위로가 넘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저희 교회에 풍성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부터 3장 끝까지는 새로운 주제의 권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장에서 사도는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봉사하는 일로 기쁨을 잃지 아니하고 하나됨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서로를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3장은 그리스도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도 말고 그들을 삼가며 바울의 본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절은 육체를 자랑하고 율법의 의를 쫓는 자들을 삼가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12~16절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만족하며 자랑하지 말고 푯대를 바라보며 위에서 부르시는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고 경주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17~4:1절은 너희들이 이러한 삶을 행하라고 권면하며, 하늘 시민의 누릴 영광을 증거하며 주 안에서 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장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복음의 대적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순전치 못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한 자들과 같은 부류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율법의 자랑과 의를 추구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모세 율법을 따라 육체를 자랑하고, 가나안 땅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며 땅의 일을 생각하고 그것에 전념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이들을 따르지 말고 이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권면하며, 이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이들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의 의를 버리고 땅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의 의를 구하며 하늘 시민으로 행하는 본을 따라 너희들도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시민이 얻을 영광에 대하여 3장 끝 부분에서 결론적으로 증거하며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절의 내용은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절은 새로운 권면을 도입하는 형식을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라고 시작하며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후반부~4절 전반부는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 삼가 하라고 말하며 그들이 할례당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할례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 후반부에서 6절에서는 바울이 율법을 따라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과 비교해서 자신은 더욱 육체를 신뢰할만 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11절은 바울이 그러한 모든 신뢰와 자랑을 버린 이유와 자신이 지금 힘쓰는 삶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고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율법의 의와 자랑을 똥처럼 취급하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종말로”는 기본적으로 마지막으로, 끝으로, 최종적으로 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이런 의미보다는 이제까지 권면했던 내용을 결론지으면서,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의미로 그리고 이제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 안에서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면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는 것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이 말씀은 하늘 시민된 교회의 기쁨의 원천과 토대가 무엇인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복음의 진보로 인한 것이며, 주님의 존귀함을 인한 것이며, 빌립보 교회가 복음의 봉사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기쁨은 율법과 땅의 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너희들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내가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너희에게 쓰는 같은 말은 반복되는 권면을 말하는데 너희가 기뻐하라는 것이며, 2절이하에서 말씀하는 권면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권면하는 것이 바울에게는 수고로움이 아닙니다.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짜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반복해서 말함으로 빌립보 교회에게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안전합니까? 개, 행악하는 자, 손할례당으로부터 안전합니다. 바울은 대적자들을 신랄한 욕설을 사용하면서 개라고, 행악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고, 강경한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개와 행악하는 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지칭하며 불렀던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악행을 하는 자로 원수와 같이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향하고 가지고 있는 자세는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와 북한이 서로를 원수로 대한 것과 같으며, 우리와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하면 저절로 일어나는 적대 감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말을 그리스도 복음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인 손할례당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거절하고, 무효화시키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개고 악행하는 자라고 손할례당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할례당은 바로 나와 빌립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손할례당과 비교해서 육체를 신뢰할 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도 육체를 따른 자랑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자랑과 신뢰의 내용을 6절까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다른 이들 곧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과 비교해서 바울은 더욱 육체를 신뢰할만 합니다. 그들과 비교해서 더욱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이스라엘 족속이며, 베냐민의 지파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할례 받음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 곧 아브라함의 후손된 표를 살에 세겼으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베냐민의 지파며, 이방인과 연합되거나 섞이지 아니한 참된 히브리인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인 것과,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다는 것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따라,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으며, 율법을 대적하고 거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열심이 특출했으며, 율법의 요구를 다 행함으로 율법의 의로는 어떠한 흠도 찾아 볼 수가 없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율법의 자랑과 의와 신뢰함을 다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에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익과 자랑을 그리스도로 인해서 해로 여겼습니다. 그것을 손해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해로 여기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을 손해로 여기게 된 계기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며, 이때로부터 지금까지 바울은 할례와 율법의 자랑과 유익을 다 손해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있습니까? 이것을 바울은 8~9절 까지에서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은 단순히 모르는 것을 책이나, 가르침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지식이며 체득된 지식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말은 최고의 가치이며, 궁극적인 가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에게 체득되고, 알려진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은 10~11절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본받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 바울에게 체득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복종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것에 참예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바울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때문에 율법이 주었던 모든 유익을 손해로 여길 뿐만 아니라 배설물 곧 똥으로 여깁니다. 배설물은 다시는 쳐다보거나 상관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율법을 자신에게 손해로 여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똥처럼 취급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나에게 백해무익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율법을 똥처럼 취급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말은 뒤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율법에서 난 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가지려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였고, 그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닙니다. 또한, 이미 완전히 얻고 완전히 발견되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는 말이며,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는 의미와 같은 표현이 되겠습니다. 바울이 얻고 발견되기를 힘쓰는 의의 근원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이 율법을 손해로 여기고, 똥처럼 취급하면서 열심을 가지고 힘쓰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부활의 권능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울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복종하심으로 죽은 자 가운에서 부활하심으로 영광의 주가 되신 것과 같이, 자신도 죽은 가운에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기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삶의 수고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영광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바울은 하늘의 생명을 얻었고 하늘 시민이 되었으며, 그리스도 복음을 봉사하는 종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면 자신에게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영광을 얻으심과 같이, 자신도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고난에 참예하는 삶을 살면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고 영광의 형체를 입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바울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고상한 지식입니다.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셨을 뿐만 아니라, 바울과 빌립보 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늘의 생명과 시민권을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고상한 지식 때문에 바울은 이전의 모든 유익과 기쁨과 자랑을 똥처럼 버렸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는 절망과 좌절과 비참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자신을 본받아 빌립보 교회 너희들도 그리스도 복음의 원수로 행하는 대적자들을 삼가라고 눈물로 권면하면서 너희들도 주 안에서 기뻐함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과 자랑이 되시는 그리스도, 내가 전 생명을 다 드려서 섬기는 그리스도, 내가 고난과 핍박 중에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봉사하는 이 그리스도를 너희들도 섬기며 봉사하는 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을 삼가고, 주 안에서 기뻐함으로 나를 본받아 그리스도 복음을 봉사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십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백성들과 제자들까지도 거절하고 말리는 죽음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만류한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저주의 길을, 하나님께 진노를 받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우리로 하늘 시민이 되게 하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복종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셨고 그에게 영광의 이름 곧 주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정죄를 이기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시고 하늘 시민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권세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리스도를 믿게만 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그리고,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율법이 주었던 모든 유익과 자랑을 똥처럼 버린 것입니다. 율법이 바울에게 주었던 유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로 모세의 자리에 앉게 한 것이며, 남위에 자신을 높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땅의 풍성한 복과 강력한 힘과, 후손의 번성을 의와 자랑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복음의 원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이 내신 새로운 산 생명의 길, 의의 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행해야 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은 육체를 자랑하도록 하는 율법의 의를 똥처럼 여기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떤 영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로 다윗의 길, 모세의 길이 아니라 고난과 죽으심과 복종의 길을 걷게 하신 영이시며, 이제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셔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우리 안에서 함께 하시는 진리와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게 하는 영입니다. 죽기까지 아버지를 복종하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도록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다툼과 투기와 허영과 시기로 행하는 삶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본받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일과 생각과 삶을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존귀를 위한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입술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사랑과 희생의 봉사를 통하여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그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참으로, 교회의 대적, 그리스도 복음의 대적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우리 안에서 기쁨의 봉사를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있고, 그 간격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는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 있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저 율법이며, 세상의 철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분이시며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살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넘치는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님,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위해서 기쁨으로 복음을 봉사하는 삶을 사십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십시다. 우리 모두가 다 그리스도 예수가 되어서 부활의 권세와 생명을 선물하는 권세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사십시다. 세상과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비참하게 하게 우리에게 복음을 봉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우리를 약한 자로, 천한 자로, 무익한 자로 여기게 만들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우리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들은 하늘 시민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에 참예할 자들입니다. 참으로 내가 사는 모든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며 증거하십시요. 기쁨으로 모든 삶을 다 드려서 그리스도를 봉사하십시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예하며 그 죽으심에 함께 하십시요. 그리하면, 우리에게 부활이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우리가 참예할 것입니다. 복종과 겸손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외에 우리에게 생명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에 참예하고 예수를 본받는 것만이 우리에게 생명의 길입니다. 이것외에 우리에게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자신을 높이고 이 세상에서 배를 불리고 영광을 구하지만, 그런 것에 미혹되지 말고 그들과 교제하거나 함께 하지를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만을 추구하는 일에 전념하십시요.

참으로, 은혜와 평강 교회 안에서 함께 이 복음의 봉사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님들, 우리가 서로를 봉사하십시다. 서로의 유익이 무엇인지 그것을 먼저 생각하며, 이 복음의 봉사를 위해 수고와 노력을 다 하십시다. 기쁨으로 복음을 봉사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대적과 이론을 다 파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교회를 봉사하십시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와 평강이 넘치도록 하십시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이 지식을 따라 모든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 기쁨을 잃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실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