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마중물

꿈꾸는 섬 2010. 3. 17. 21:05

마중물

창문 너머 멀리 빨간 짐칸을 싣고 오는 오토바이가 보이면, 나는 서둘러 예배당 마당까지 나가 우편 배달부를 맞곤 한다. 한창 사람무리에 섞여 살 나이에 산간벽지 깊디깊은 오지에 묻혀 살다보니 그렇게 사람이, 사람의 소식이 그립고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우편물을 건네고 돌아서는 집배원에게 차라도 한 잔 들고 가시라 번번이 권했지만 때마다 사양을 하셨다. 그런데 오늘은 배달할 물량이 적은지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저는 커피를 좋아하는데요." 하시면서 토방에 잠깐 앉으셨다.
나는 롤빵 한 조각을 잘라 접시에 놓고 커피 주전자를 꺼내어 새 물을 받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방에 들어가 집배원과 망명객인 시인 사이에 피어난 우정을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의 사운드트랙을 찾아 올려놓았다. 음반을 통해 낭송되는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온 집안에 은은히 퍼지고 있었다. 내가 집배원에게 드릴 수 있는, 나로서는 최대의 감사 표시로 그리한 일이었다.
빵을 곁들여 후후 불어가면서 맛있게 커피를 다 마신 집배원은 다시 장갑을 끼고 털목도리를 감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입춘이 지났으나 시샘 바람이 몹시 차가운 한낮의 일이었다.
알고 보면 이 세상에 고맙지 않은 존재란 없다. 심지어는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는 악역을 맡은이까지도 내 영혼의 진화를 위해 고마운 존재이다. 그럴진대 매일 집까지 방문하여 내 앞으로 부쳐온 우편물을 전해주는 집배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는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아무리 직업이라 하나 고마운 일은 고마운 일이다. 힘들고 어려운 수고를 통하여 우리네 삶을 돕고 삶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은인이 어찌 집배원뿐이랴.
재작년 나는 <마중물이 된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을 쓴 일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과 동고동락을 같이 하다가 끝내는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준 예수, 그분의 고난을 기리는 사순절 동안에 님의 고마우신 삶을 묵상하면서 이 시를 쓰게 되었다.

 

우리 어릴 적 펌프질로 물길어 먹을 때
'마중물' 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 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그대의 아련한 기억 속에도 작두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두샘에 마중물 한 바가지 붓던 기억도…….
마중물, 이것은 오늘 이 시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위로와 용기가 된 작은 예수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슬픔, 아픔, 수고를 대신 짊어지고 살아가는 낮은 자리의 낮은 사람들, 그들 모두를 일컬어 마중물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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