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임의진 참수필집/ 이레>>> 작가의 말
해 저녁 꽃상여 떠나간 한갓진 동네를 안쓰럽게 감싸안는 종교를 뛰어넘어 그 상냥한 밀어에 글을 쓴다, 글을 벗삼아 먼길을 걸어왔다 명색 시인이 내야 할 시집은 내지 않고 만날 이러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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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특하다
임의진 목사의 두 번째 책이 나온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쓰면서
더디게 천천히 살펴가면서
항상 이웃을 생각하는 것이 기특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임목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권정생/ 아동문학가)
이 촉촉한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임의진 어깨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도대체 이 촉촉한 슬픔이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합니다. 글투는 이토록 고소하고 날렵하고 게다가 깔끔하기조차 한데 배어나오는 것은 끝내 아픔이요 슬픔이니, 나는 아무래도 '남녘'이라는 단어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진땅은 지난 수백 년 세월 궁벽진 유배지였습니다. 그러니 귀양살던 선비들의 올곧은 기품과 그들을 먹여 살린 민초들의 도타운 인심이 그곳에 냇물 되고 샛길 되어 흐르리라는 건 쉽사리 짐작되는 일입니다. 임의진 어깨춤의 글에서 푸근한 넉살과 쨍쨍한 군령 소리가 아울러 들리는 까닭이 여기 있지 싶습니다.
이 책은 그냥 책이라기보다 남녘 땅 끝자리에서 천연스레 울리는 종소리입니다.
정치인이나 군인들한테는 휴전선도 있고 철조망도 있겠지만, 텅빈 속으로 먼저 울고 남은 넋으로 세상을 울리는 종소리는 그런 것 모릅니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남녘 바다 종소리가 백두대간을 타고 올라 북녘 산마루를 흔들고 있는 게 보이고, 그래서 이렇게 괜히 고맙습니다.
(이현주/ 목사, 시인)
부칠 우편물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 집에 있기 외로워 아침 일찍 읍내를 찾았다. 외로움이라는 낱말보다 말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싶다.
"어, 목사님이 무슨 일로 읍내엘 다 나오셨답니까요?"
서점 앞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안골 사는 윤성이를 바짝 만났다. 먼 도시로 나들이를 간다거나 동네 분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면 거의 칩거로 일관했던 몇 해가 있었다. 읍내를 배회하는 나를 구경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일 것이다. 뭐 그런 때가 있으면 이런 때도 있는 것이지.
"나는 읍에 나오면 안 되냐?"
"날이 보통 쌀쌀한 게 아니랑게요. 뜨거운 꽃다방 커피, 어떠세요?"
"그라까? 근디 커피는 네가 살 테냐?"
"아이고나 커피 두 잔 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십니까. 짠돌이 소리 두고두고 들으실라고요?"
"아예 협박을 해라, 협박을."
윤성이만 아니었다면 '웃기고 자빠졌네!' 하고 냅다 줄행랑을 놓았을 거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애나 노인이나 가릴 것 없이 거절 않고 과자며 막걸리며 사주었더니만 버릇이 들어 나를 무슨 봉으로 알고들 있다.
바쁘다고 내빼는 게 상책인 줄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서도, 우리 교회 집사님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내미요, 랭킹 10위 권 안은 무난할 내 귀한 말동무요, 성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젊은 농부 윤성이에겐 마음이 약해지고 마는구나.
"일단 저거나 좀 먹을까? 나 시방 겁나게 출출한디야."
터미널 앞에 붕어빵 장수가 보였다. 방금 건진 누르틱틱한 붕어빵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목사님 체통이 있지 길에서 붕어빵을……"
"내가 무슨 넥타이 매고 머리에 기름 바른 목사냐?"
윤성이가 하나 먹을 때 배고픈 나는 두 개씩 집어먹었다. 아침밥으로 대신하는 미숫가루가 떨어져서 끼니를 걸렀더니 허기가 단단히 졌던 모양이다.
윤성이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외지를 전전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서른 마지기 나락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늦깎이로 면소재지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기도 하다.
농부 겸 대학생, 말이 대학생이지 밤낮 안 가리는 술로 부식된 얼굴에다 볼록 튀어나온 똥배는 아저씨 냄새가 풀풀 난다. 윤성이 어머니는 아들놈이 대학을 다니다보면 참한 여대생이라도 하나 꿰어차게 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계시지만, 물론 그랬으면야 오죽 좋겠는가마는 요즘 여자들이 누가 농사꾼한테 시집을 오겠다고 그러는가. 여자친구는커녕 같은 과 여학생들도 오빠라 안 부르고 아저씨라 부른다며 투덜거리는 걸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결혼적령기를 지난 이가 제 짝을 찾을 가능성은 원자폭탄 투하 뒤 살아남을 확률보다 낮다던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라는 영화에서 주워들은, 참으로 가혹한 대사다. 우리 윤성이도 짝 없이 결혼적령기를 넘기고 노총각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원자폭탄 잿더미를 헤치고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참한 색시감을 꿰차고서.
우리가 개시였나 다방에 손님은 없고 아침드라마에서 다투는 소리만 시끄럽다.
"오늘은 수업 없어?"
"토요일이잖아요."
"맞아, 그렇군."
윤성이가 담배를 꺼내 물고 화랑성냥에서 얻은 불을 지핀다.
"오늘은 말이다, 우리 둘이 짝짜꿍하고 놀라고 만난 운명의 날이니까 배신때리지 말고, 나 따라서 우리집에나 가자꾸나. 친구가 보내온 차가 있는데 아직 개봉도 안 했다. 차 마시면서 노래도 부르고 딩가딩가 놀다가 칼국수나 맛나게 끓여 묵자고."
"내일이 주일인데 설교 준비도 하셔야 되고 바쁘시잖아요."
"무슨 설교준비를 하루종일 한다냐? 네가 그렇게 날 걱정해주는지 미처 몰랐다잉."
'토요일은 밤이 좋아'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토요일 밤만 되면 한 잔 걸치자고 엄호꾼들까지 총동원하여 전화질을 해대는 놈이, 사탄도 부족하여 연탄이요 구공탄인 녀석이 바로 윤성이 아니던가. 언제 내 목사 노릇을 걱정했다고 흰소리냐?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거무튀튀한 하늘. 그러나 눈 소식은 없고 내일쯤 겨울비가 내릴 거란다.
윤성이가 모는 낡은 티코가 앞장을 서며 만덕산 자락 우리 사는 동네로 돌아왔다.
동네 초입, 교각 아래 무슨 구경이 났는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예배당 아래마당에 차를 세우고 교각으로 걸어갔다. 상훈이 아빠를 비롯하여 동네 젊은 축들이 떡붕어를 잡는다고 개울물에 뛰어들어 있었다. 어르신들은 붕어매운탕에 쐬주 생각으로 침을 꼴깍이시며 구경이셨고.
물고기 잡는 일이라면 환장을 하는 윤성이가 아닌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지는 몰라도 붕어 잡는 일을 뒤로 물리고 모르는 척 눈감을 윤성이는 아니다. 어느새 집에 다녀왔는지 족대와 허벅지까지 차는 고무장화를 신고 나타났다. 어이구 이 눈먼 붕어들아. 윤성이에게 잡히는 덜 떨어진 붕어들이 다 있군. 손바닥만한 붕어들부터 이 따 만한 붕어들까지. 돌 틈이며 수초 밑에 붕어가 저렇게 많이 살고 있었구나.
찬물 때에 잡은 붕어를 두어 마리 넣고 무 송송 썰어 넣고 매운 고추를 팍팍 썰어 넣고 고사리 말린 것도 조금 집어넣고 해서 끓인 매운탕 맛은 참말 '국물 맛이 끝내줘요'다.
간만에 차(茶)로 배를 불려 맑은 피 맑은 눈을 가져보려 하였거늘 난데없는 붕어잡이에 휩쓸려 이 무슨 꼴인고. 양동이를 들고 윤성이를 쫄쫄 따라다니며 잡은 붕어를 챙기느라 콧김은 씩씩, 한 마리라도 더 잡자 눈은 뻘개질 대로 뻘개 져있으니.
족대 그물에 걸려 올라온 각시붕어들이 보였다. 손톱만 한 크기의 각시붕어. 무지개 빛깔을 띠는 각시붕어. 피라미는 먹어도 각시붕어는 먹지 않고 놓아주는 법이다. 작고 맛이 없어 그러기도 하겠지만 각시붕어는 잡아먹어서는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고운 이름을 가졌다.
"각시붕어를 이렇게 많이 살려줬는데 너 올해가 가기 전에 각시 될 여자친구 하나 꼭 생기겠다야."
"제발 조깐 그랬으면 좋겠네요. 올해는 가을도 무지하게 안 길었습니까. 이제는 겨울이라고 밤이 또 너무도 길당게요."
내 말 때문이었을까? 윤성이가 각시붕어를 놓아주는 모습이 참으로 지극하구나. 휘딱 물에 내던지는 게 아니라 마치 물고기를 방생하는 보살의 정성어린 손길처럼 각시붕어를 놓아주고 있다.
각시붕어야! 저 공덕을 잊지 말아라. 날 따땃하고 좋은 어느 봄날 농촌 총각 윤성이에게 족두리를 하고 달려들 처녀 하나 어떻게 안 되겠냐? 윤성이 방에 어지러이 붙어 있던 팔등신 여배우 사진을 네게 디밀며 그런 비슷한 여자를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후대를 생각하여 머리는 펜티엄급은 그래도 되어야겠고, 아이 놔두고 도망치지 않을 정도의 마음씨면 되겠고, 땀 냄새 흙 냄새를 분 냄새 향수 냄새보다 좋아하는 여자여야 하겠다. 콤바인을 몰고 추수하러 들로 나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그런 처자는 어디 없겠냐?
"얼른 담지 않고 넋놓고 뭐 하고 계신다요? 저러다 물로 내빼겠네."
"옴마나야, 요놈은 팔뚝만 하다잉. 근디 거시기 붕어말고 여자를 보내달라니까는 그러네."
"시방 그게 뭔 말씀이래요?"
"으응, 거시기 거, 있어. 너한테 한 말이 아녀. 계속 붕어나 잡어."
진눈깨비가 한차례 흩날린 다음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함박눈. 근 보름 가까이를 목을 빼고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로구나. 새벽마다 창문 밖을 내다보는 심정은 '조마조마' 그것이었는데……. 간밤에 혹시 내렸을지도 모르는 일인지라 하나 둘 셋!, 창문 밖으로 고개를 들입다 내밀면 된서리가 가루눈이나 되는 양 수두룩히 쌓여 있을 뿐이었다. 맑은 하늘은 열에 하나로 드물고 잔뜩 찌푸린 겨울 하늘을 치켜다보며 씩둑씩둑거리는 날이 잦았다. 저토록 먹장이면서 기어 눈은 내놓지 못하겠다는 심사는 또 무엇이란 말이냐. 대밭을 술렁이게 하는 바람소리는 날이 다르게 거칠고 어제 느지막이 돌절구 씻는다며 부었던 물은 마당으로 흘러내려 사르르 얼기까지 했더라만 정작 당도해야 마땅할 눈은 코빼기도 구경이 어렵구나. 눈이 내리면 춥고 배고플 형편의 이웃도 있을 것이기에 조심하며 꺼내보는 말이나 이 몸은 이제나저제나하면서 오로지 눈보라 몰아칠 날만을 발원하고 있다.
세상에 지난해처럼 가을이 길고도 깊었으랴. 올가을도 만약 지난해처럼 그러기라도 한다면 돈을 꾸어서라도 어디 먼 나라로 잠깐 도망을 가버려야지 원. 오로지 눈 내리는 날을 기대하며 이 황량한 주위사방을 견디고 버텨오지 않았던가. 서러운 가난도 잊고 깊게 벤 마음의 상처도 다독여가면서.
비손을 모으는 것뿐이 아니었다. 레이먼드 브리그즈의 그림동화책 <눈사람 아저씨>를 주일학교 공부방 책꽂이에서 꺼내와 내 방 한쪽 벽면에 표지 그림이 보이도록 기대어 세워두기까지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댕강 두른 눈사람 아저씨가 럼주라도 한 잔 걸치신 모양같이 빨간 코를 벌룽거리며 흠흠흠 웃고 계신다.
이봐요 아저씨! 우리도 북남 이산가족처럼 '조속한 시일에 열렬히 상봉하여' 걸쭉히 술 한잔 걸쳐 보시더라고요. 술 때문이 아니라 눈보라 복판이라 코가 빨갛다고요? 치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이들 보는 그림동화책 주인공한테 무슨 소리냐고요? 알았어요 알았어. 그건 그렇다 치고 아저씨, 눈사람 아저씨! 목에 두르고 계신 목도리하고 머리에 쓰신 모자 있잖아요. 저도 똑같은 걸로 이번에 구비를 했다니깐요. 지난달 일이 있어 서울에 갔었거든요? 어느 육교 위 가판에 초라한 행색의 아줌마가 놓고 팔던 연둣빛깔 목도리와 모자. 문득 아저씨 생각이 나더라고요. 흰눈 펑펑 내리는 날 아저씨를 만나면 건네 드려야지 싶었지요. 물론 제가 쓰고 다니는 날이 더 많겠지만 말이에요. 아저씨가 저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하면 되죠 뭐.
아저씨! 이제 그만 그림동화책 속에서 나오시지 그러세요. 하느님한테 말씀 좀 잘 드려보세요. 찹쌀 같이 찰진 눈으로 몇 가마니 정도면 될까요? 하느님이 아저씨 청을 거절하신다면, 그러면 지금 제가 하는 말을 똑똑히 기억해 두셨다가 하느님에게 그대로 전해 주세요. 앙상한 나뭇가지며 텅 빈 들판, 어지러운 바람소리, 이 모두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막내아들이 여기 훌쩍이며 살아가고 있다고요.
햇볕 한줌 구경할 수 없었던 하루, 내리라는 눈은 내리지 않고 자락 자라락 겨울비가 무너져내렸다. 나는 꼼짝없이 집에 갇혔고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일로 소일거리를 삼았다. 누구의 편지가 되었든 간에 오늘 당도한 편지는 봉투 째 부둥켜안고 아랫목에 들어가 아껴 읽으리라 별렀건만, 박복도 하여라. 오늘은 편지 한 통 없고 조간이 석간이 되어 오는 신문마저 빗물에 젖은 체였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서 아다지오 부분만 골라 듣고 싶었다. 침침한 겨울 하늘에 어쩜 이리도 어울릴까. 시셀의 노래 <섬머 스노우 Summer Snow>도 생각이나 올려보았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팬 플루트 소리는 여름나라에서 출발한 눈보라가 틀림없겠지?
이왕지사 이리 된 거 오만가지 청승이란 청승은 다 떨어보자꾸나. 간만에 다락에서 통기타까지 내렸다. 도 미 솔 도 조율을 마치고, 자! 그럼 무슨 노래를 한번 불러 볼까. 시방 겨울비가 내리고 있지. 그래 조동진의 <겨울비>가 괜찮겠군. 토독 토도도독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가 장단을 맞추며 기타 반주를 거들고 나섰다.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방안 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두고 내가 하늘 보며 천천히 밤길 걸었을 때 내 마른 이마 위에 차가운 빗방울이……"
노랫말을 까먹는 일이 잦은데 오늘은 무슨 노릇인지 술술 잘도 떠오르는군. 이왕 시작한 김에 한 곡은 더 불러야 성이 차겠다. 겨울비가 가루눈으로 변해 하염없이, 하염없이 내렸으면 바라면서 한 곡조 더.
"누구인가 귀익은 발자국 소리에 가만히 일어나 창문을 열면 저만치 가버린 낯설은 사람 무거운 듯 걸쳐입은 검은 외투 위에 흰눈이 하얗게. 어린 나무 가지 끝에 찬바람 걸려 담 밑에 고양이 밤새워 울고 조그만 난로가 물 끓는 소리에 꿈 많은 아이들 애써 잠들면 흰눈이 하얗게. 한겨울 바닷가 거친 물결 속에 잊혀진 뱃노래 외쳐서 부르다 얼어붙은 강물 위로 걸어서 오는 당신의 빈손을 가득 채워 줄 흰눈이 하얗게 흰눈이 하얗게 흰눈이 하얗게…"
이어지는 조동진 레퍼토리, 이 정도 날궂이를 하면 내릴 법도 한 눈인데 오히려 빗줄기만 더 굵어지고 있어.
비 내리는 마을길을 내다보며 그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날이 추워 아무도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 깊은 겨울. 멀고 먼 땅끝 동네, 그리움이 깊지 않으면 선뜻 찾아올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남해안 바닷가. 산허리를 감고 피어오르는 굴뚝연기를 보거든 내가 불피워 올린 구조 신호로 알렴. 하얗게 하늘로 올라가는 저 연기의 길을 따라 하늘에서 동아줄 같은 흰눈이 하얗게, 하얗게 내려올 게야. 한편으로는 길이라 이름하여도 되겠다. 지우개처럼 온 세상의 길을 낱낱이 지워버리고 오로지 외길만이 내 앞으로 펼쳐질 거야. 당신과 나를 잇는 길. 자박자박 숫눈을 걸어 내게로 달려오실 길.
토방까지 쓸려온 눈발이 창호문을 두드리며 걸어잠근 문고리를 열라고 재촉할 것이다. 밤이면 숟가락 하나 꽂아두었던 문고리. 앞으로는 잠그지 않으리라. 숟가락을 걸어두지 않으리라.
그대가 오시면 털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두르고서 같이 바깥 구경에 나설 것이다. 마을 꼭대기 가난한 할매 집 올라가는 길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다가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뒤엉켜 눈싸움도 한판 벌이고 손 시린 아이가 있으면 벙어리장갑을 벗어줄 것이다. 곱은 손을 염려하고 그대 호주머니에 묻어둔 따듯한 손 하나 내게 내민다면 아, 나는 가슴이 쿵쾅거려 마음을 죄 들켜버릴지도 몰라라. 집으로 돌아올 때쯤 발목까지 빠지는 눈 구덩이에 드러누워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눈을 받아먹기도 할 것이고 그대를 깨워 새벽종을 치다가 종각 꼭대기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 신비로운 장면도 함께 보고싶어.
날씨 보도에 따르면 내일아침은 오늘보다 더 춥단다. 이번 기대는 제발 무산되지 말았으면. 흰눈이 하얗게 쌓인 날, 그대 오시지 못한다면 빙판으로 더욱 멀어진 길일지라도 내가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설게요. 그날 내가 머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그대 창문을 두드리거든 부디 따듯이 맞아주세요. 내가 가장 그리워한 사람에게 찾아간 길이었으니.
호흡곤란의 시절을 견뎌냈더니 다시 온쉼표로 숨쉬기다. 불볕 통에서는 동자가 풀린 눈으로 헉헉 학학 가쁜 숨쉬기였지. 가끔 집을 나서면 밟히는 땅마다 앗 뜨거워! 나무 그늘을 찾아 주저앉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끄저께부터 정말 그끄저께부터 서늘 바람이 만져진다. 사부랑삽작 여름 마루터기를 넘은 가을은 입추 어간을 서늘바람으로 장식하고 있다. 여름 동안 시들거렸던 심신의 병고를 쓰다듬어주고자 왕림하신 약왕보살님이신가, 이 서늘 바람은. 단지 깃발을 세웠을 뿐 늦더위와 집중호우를 동반한 태풍은 여전히 위협적이겠으나 서늘 바람은 우리 모두를 가을 복판으로 견인해 갈 것이다.
두고 보시라. 가을이 되면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연인들이 늘어갈 것이다. 여름에는 살갗마저 더워 멀찍이 따로 걸었던 사람들이 고실고실 마른 손을 다정히 부여잡고 서늘바람 속을 활보할 것이다. 더러 용기 있는 연인들은 서늘 바람 치는 느티나무 뒤에서 입술을 나눌 것이다. 올 가을에는 그대도 그렇게 사랑을 한번 해보는 것이다.
으흠, 사랑노래나 한 곡조 뽑아볼까나? 예배당에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화음이나 간신히 짚는 정도의 연주 실력이다. 그래도 유명 피아니스트처럼 폼을 잡고 앉아서, 긴 머리카락에 수염까지 선풍기 바람에 날리며 건반을 두들기면 들을 만하기보다 볼 만은 하다는 것이 집 식구들의 평이다. 심심하면 장을 치라는데 나는 이렇게 피아노를 치고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증이 가시지 않으면 노을 물든 하늘에 대고 땡그렁땡그렁 종을 치기도 한다.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인줄 뻔히 아는 동네 사람들이니 "예배 때도 아닌디 무신 일이라요?" 함시롱 달려올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심심할 때 또 하는 짓이 있는데, 보통 교회들에서 내는 뻔할 뻔 자의 천편일률적인 주보가 아닌 친구 화가들의 그림으로 표지를 꾸미고 일 주 일동안 씨름한 시와 아기자기한 동네소식을 넣은, 우리 교회 주보週報를 그리운 이들에게 보내는 발송작업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세 가지를 다 했다 아닌가. 큰비가 내린 뒤끝이라 병해충 걱정으로 새벽 나절 논에 들른 일 말고는 마땅히 신나는 일을 찾지 못했던 하루였다. 책도 읽기 귀찮고 마실 나가서 '목사님, 요 술 한잔 잡숴보셔' 그리하여 년년월월일일시시 오고가는 술잔에 코를 박고 사는 그 짓도 지겨웠다.
마실 나가는 일이 상처가 느는 일인지라 두렵기조차 한 요즘이다. 며칠 전에는 평리댁 할매가 치매로 고생을 하시는 데 들렀다가 방 안에 박힌 군내에 코를 쥐고 도망쳤고, 교회 다니면 나을 줄 알았는데 병이 낫질 않자 교회를 그만둔 잣골 진씨 아재에게도 들러 병은 평안한 마음과 의료기관이 고치는 거라고 설명을 드리느라 입이 다 아팠다. 텃골 정씨 아재는 전남대 병원에 위출혈로 입원을 했다길래 급히 광주까지 문병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 참말 다사다난한 나날들이었어. 그런데 막상 그런 일도 없으면 금방 심심해진다는 거 아닌가.
주보를 접어 봉투에 넣고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 가을 소식이나 알릴 참으로 조그만 엽서에 몇마디 쓰다가 팔도 아프고 그래서 윗목에다 밀어버렸다. 갓방 냉장고에 먹다 넣어둔 김빠진 캔 맥주가 생각이나 꺼내 마신다는 게 매실주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이 기분에 종을 치지 않을쏘냐. 종 줄을 당겼다가 노모에게 미친 목사 소리까지 얻어듣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예배당에 들어가 피아노나 치자.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스토리 끝에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한참은 쳤을 것이다. 손마디가 아리아리해서 건반 덮개를 내렸다. 예배당 안은 우리 집에서 제일 시원한 장소다. 키 큰 달리아가 창문까지 까치발을 하고 꽃등을 밝혔길래 그 창문가 장의자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목사님. 저 피아노 칠게요."
은영이가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으면서 그랬다. 우리동네 한 대 뿐인 피아노, 은영이에게 이 피아노는 악기 이상일 게다. 방학 때가 아니어도 은영이는 피아노명곡집을 들고 교회를 찾아오곤 했다. 드뷔시의 꿈이나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 베토벤의 월광을 은영이의 서툰 솜씨로 들을 때는 행복, 바로 그 순간이다. 은영이가 마르다 아르헤리치 같은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레슨도 받아야 하고 만만치 않은 돈이 들텐데, 가난한 아이 은영이에게는 요원한 꿈일까.
제가 들고 온 악보는 놓아두고 내가 펴놓은 유행가 책하고 내 요즘 십팔번인 존 레논의 이메진 악보며 동요책 중에서 부를 노래를 한 곡 골랐나보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초록빛 여울물에 초록빛∼
두 발을 담그면 담그면∼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이 사뿐사뿐 나비가 춤추는 것만 같구나.
"은영아 한 곡 더 쳐봐라."
사업 실패로 빈털터리가 되어 시골로 미끄러진 은영이네. 시골에 내려와서도 벌잇자리는 마땅치 않다. 피아노에 붙은 압류딱지를 은영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 것이다.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오는, 부시맨보다 더 검게 탄 해빈이가 오늘은 일찍 귀가를 했구나. "누나!", "해빈아!" 좋아들 한다.
해빈이가 은영이 곁에 끼여 앉더니 미레도레 미미미 레레레 미미미 떴다 떴다 비행기를 오른손 하나만으로 치는 거였다. 광주에서 엄마 등쌀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덕분으로 저만치 하는 것이다. 두 손으로 치려면 시간이 수월찮게 걸리겠지? 기왕 배우기 시작한 거, 해빈이도 은영이처럼 피아노를 잘쳤으면 좋겠다.
나말고도 이 두 아이에게 피아노는, 우리동네 하나뿐인 피아노는,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가. 차압을 알리는 붉은 딱지가 붙지는 않을 피아노니 마음놓고 치거라.
그리고 부탁한다, 피아노야!
부디 이 아이들에게서 오랜 친구가 되어주렴, 너만은.
일요일이면 아침과 저녁, 때를 정하여 꼬박꼬박 종을 친다. 종지기로 일하셨던 신천댁 할머니가 소풍 끝내고 먼길 돌아가신 후 딱히 종 줄을 잡는 분이 안 나타나고, 하여 대신 내가 그 일을 이어받아 종을 쳐오고 있다. 일이래야 봤자 종 줄을 잡고 이 삼 분 여쯤 적당한 강도로 당겼다 놓았다 하면 되는 일이다.
집집마다 토방을 없애고 새시 유리문을 단 집이 늘어나면서 안방까지 종소리가 전달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논밭에서 일하다 혹은 들길을 걷다가 내가 친 종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가슴은 이미 천상의 찬미로 충만하게 되리라.
부지런히 종을 쳐오다가 지난해 겨울 그만 종 추가 삭아 부러지는 바람에 종소리와는 안타까운 이별을 하고 말았다. 이후 종 추를 구해보려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다. 그러나 절집의 종을 만드는 곳은 많아도 예배당에 쓸 종을 만드는 곳은 찾기가 어려웠다. 바쁜 일상이라 종추 구하는 일에 메일 수도 없었고 종소리 없는 대로도 그락저락 살아졌다. 종소리는 그렇게 먼 기억 저편에서만 뎅그렁거렸다.
앞산의 절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면 고장난 우리 종 생각에 쓸쓸한 마음이 일었다. 절집의 웅숭 깊은 종소리를 들으며 교회 종루를 마냥 바라보곤 했다.
서울 살 때, 고궁의 낙엽이 밟히던 광화문 언저리의 성공회 성당 나무의자에 앉아서 들었던 종소리, 약자들의 농성장을 찾았다가 명동의 성모상 앞에서 비둘기랑 들었던 종소리, 한참 방랑벽에 휘둘려 전국 명산고찰의 숲진 뜨락을 산보하고 다니던 시절 들었던 절집의 중후한 종소리는 평생 잊을 수 없을 종소리들이다.
그 소리에 하나 뒤지지 않는, 우리 교회 종소리였는데…….
지난 이른 봄날, 애태우는 사정을 건너들은 철공소 진택씨가 마침내 종 추를 구하여 가져왔다. 고마운 사람 진택씨랑 둘이서 끙끙거리며 종탑에 올라갔더니 방울새 부부가 종루 언저리에다 집을 짓고 살던 둥지가 거기 있었다. 종을 치지 않는 동안 종탑은 따로 생명을 보듬고 있었던 것이다. 종루에서 알을 품던 방울새가 종소리 대신 쪼로롱 쪼로롱 울어대던 일이 선하다. 나는 방울새 지줄거리는 종루 아래서 어릴 적 불렀던 동요를 기억해 부르곤 했지.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간밤에 고 방울 어디서 사왔니
쪼로롱 고 방울 어디서 사왔니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너 갈 제 고 방울 나주고 가렴
쪼로롱 고 방울 나주고 가렴
새끼들이랑 멀리 날아간 방울새 식구들이 혹여 찾아와준다면 뎅그렁 쪼로롱 뎅그렁 쪼로롱, 재미있는 소리가 온 동네 들판으로 울려 퍼질지도 몰라라. 나도 종을 치면서 방울새야 방울새야 동요를 흥얼거리고 싶다.
다시 종을 칠 수 있게 되자 신이 나서 정한 때가 아닌데도 마음 내키는 대로 종 줄을 잡아당기곤 한다. 다시 종을 치면서부터는 종 줄을 잡고 잠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종지기 신천댁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꼭 그러셨다. 병으로 몸져누우시기 전까지 그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기도는, 하느님이 귀가 먹었나 시끄럽게 목소리를 딱딱이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입 안으로 우물우물 삼키는, 고요하여 이윽고 깊어진 그런 기도였다. 식사 전에는 물론이고 밭에서 김을 매실 때도 객지 나간 자식들이 돌아오거나 떠나갈 때도 할머니는 늘 비손을 모으고 기도를 바쳤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참말 보기 좋았다.
이 저녁, 종소리를 듣게 될 모든 이들의 평화를 빌며 나도 할머니처럼 눈을 감고 기도를 바친다.
아무래도 나는 목사보다 종지기가,
설교보다는 종 치는 일이
내게 더 잘 맞는 일인 듯 싶다.
주전부리 할 게 떨어져 읍에 나갔다가 신발가게에 들렀다. 타이아표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골랐다. 멀리 출타할 때는 해빈이 엄마가 큰맘 먹고 장만해준 가죽 샌들을 닦아 신고 나가는데, 아껴서 신으려고 함이 아니라 동네에서는 검정 고무신이 세상 편하고 좋다. 요새는 산승들이나 농군의 전유물로 그치고 말지만 과거를 거스르면 요요한 차림의 아가씨도 고무신을 신었지 않았는가. 무당서방도 마누라 굿 끝나면 돈 타내서 제일 먼저 사는 물건이 바로 고무신이라고, 물론 풋살내기 기생한테 가져다줄 꽃무늬로 알록달록한 고무신이겠지만. 여하튼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고무신은 이제 신발가게에서도 찾으려면 한참이나 걸린다.
뒤축이 닳은 검정 고무신이 한 켤레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름에는 검정 고무신이 더워 보이기도 하고 하얀 고무신이랑 둘이 짝으로 가지고 있으면 좋겠기도 해서 한 켤레 장만을 한 것이다.
"으짭니까, 요 고무신. 깨끗하고 이쁘지라이?"
"뭘라 고무신을 사. 저라고 좋은 신짝들 다 언제 신을라고."
"물 묻힐 때는 고무신이 최고 아니에요."
"그래도 그라재. 시대에 맞춰 살어야 쓰는 뱁이여."
'시대에 맞추라'는 어머니의 로켓포탄을 맞고 왜 그렇게 웃음이 비끄러져 나오던지.
"엄니가 뭐라 글믄 잔 웃지잔 마라잉. 새개서 조깐 들어."
그러시고 어머니는 부채를 좌악 펼치시더니 하늘을 반쯤 가리시고는 마실을 나가셨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를 몸소 실연하실 참이신가. 이렇게 날이 뜨거운데 누가 기다릴 거라고 마실이란 말인가. 뙤약볕에 같이 심방을 돌자고 안 그러심만도 감사한 일인지라 가시라 마시라 일체 상관을 말았다.
나는 새 고무신을 신고 폴짝거렸다. 이 물가고에 돈 만원도 안 되는 신발을 사서 신고, 이것도 새 신발이라고 기분이 참말 날아갈 지경이군. 한영애가 시원하게 불러 젖힌 <꽃신 속의 바다>를 틀어놓고, 한대수의 <고무신>도 음반째 통째로 올려놓고 쿵쾅쿵쾅 난장놀이를 벌였다. 보고픈 바쁜 마음에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보았던, 그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신발 소동을 생각하면, 아, 나는 너무도 부자인 것이다. 가진 게 너무도 많은 것이다. 벌써 신발이 몇 켤레란 말인가. 그래도, "명태를 팔아서 고무신을 사서 신고 저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촌색시 만나러 간다. 아이고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
잠깐 소나기구름이 지나갔다. 차르랑차르랑 처마를 타고 흐르는 빗소리는 지열뿐만 아니라 자발 없이 달뜬 가슴도 식게해 주었으나 소낙비 때문에 걱정이 하나 생겼다. 비야 빨랑 멈춰다오. 소포가 젖으면 안 된단다. 내 새 옷이 젖으면 안 된단다.
우체부 아저씨가 두세시면 오실 때가 되었는데 어디서 물밥을 말아 드시나 소식이 감감이로고. 어제도 오전 내내 설레어하며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었다. 서울서 옷 만드는 일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틈을 내어 나 입으라고 반바지에 반팔 웃옷을 만들었다는 거였다. 보냈다는 날로 보아서는 어제쯤 도착해야 옳았다. 그렇담 오늘은 반드시 오겠지?
다다다다다 우체부 아저씨 오토바이다. 아저씨 어서 오세요. 도장 필요하시죠? 자, 여기 도장이요. 운전손잡이를 놓으시기도 전에 도장부터 내밀었다.
"중요한 건가봐요. 무척 기다리셨나봅니다."
"중요한 거죠. 날개거든요."
"날개요?"
눈이 동그라지셨다.
"옷이 날개라 않던가요?"
"아이고 또 뭐라고요. 옷이구만요."
전신거울이 있는 안채에 들어가 소포를 열었다. 우와와! 역시 솜씨가 있는 친구야. 기대한 대로군. 연둣빛 물을 들인 삼베 반바지에 웃옷은 옅은 쪽물을 들이고 애교로 왼쪽가슴에다가 매듭을 두었군. 맘에 드시나요? 들다마다요. 잘 받았다는 전화를 드리고 밖으로 나와 새 옷에 새 신발까지, 아, 이러다 입이 찢어지겠어.
이거 어디 가서 자랑을 한다지? 자랑하고 싶어 도저히 못 견디겠어.
꿩 대신 닭이라고, 강아지들아 일루 나와보그라. 이 아저씨 폼 나게 입었는데 너그들 볼 때 어떠냐? 멋지지? 표범나비야 날개때좀잠자리야 거문새똥거미야 일루와 봐. 장수풍뎅이야 풀색노린재야 왕사마귀야 일루와 보라고. 아저씨 좀 봐줘라. 수국아 해바라기야 며느리배꼽꽃아 여기 좀 봐 다오.
오! 나의 구세주, 길 건너 집 남준이가 납셨군. 너 때 맞춰서 잘 나타났다.
"봐봐, 멋지쟈?"
"뭐가요?"
"옷하고 신발 좀 봐줄래?"
"옷이 뭐가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대요. 신발은 딱 거지 고무신이고."
"요녀석이 덜 맞고 컸나 뭔 소리다냐? 다시 한 번 잘 생각하고 말해 봐. "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 아침나절 읍에 나가 과자봉지를 여러 개 사들고 왔다는 걸. 그리고 냉동실에 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사실을. 남준이는 관심 밖이라는 듯 해빈이 자전거나 빨랑 빌려달란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새 옷을 입고 뛰어보자 폴짝. 나는 언제서야 철이 들라는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철이 들라는고. 아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나도 곧 학부모가 되게 생겼는데.
우리교회는 개신교와 천주교 성서학자들이 머리 맞대고 번역한 공동번역성서를 보고 있다. 개신교 교회지만 학문적으로 꼭 보아야 할 외경이 딸린 천주교용으로. 구약성서 일부는 돌아가신 통일일꾼 문익환 목사님이 번역을 하셨다던가.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다보니 쓰기는 하느님이라고 쓰고 읽기는 하나님으로 읽는, 국어공부를 막 시작한 아이가 보아도 웃음거리가 될 교회가 되고 말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하느님이라고 쓰고 읽고 부르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하나님이라고 읽고 부르고 하는 것이 입에 뱄으니 그렇게 따라줄 밖에.
할머니들 가운데 몇 분은 도시 사는 딸네들이 사준 개신교 성경책, '가라사대, 말미암아'가 도처에 튀어나오는 옛날 구닥다리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신다. 그러나 글자를 모르시기 때문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비싸기만 오살나게 비싼 찬송가 합본 가죽에 지퍼까지 달린 성경책이다. 대다수 개신교 교회는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아직도 구닥다리 고어체 가라사대 성경책을 본다. 목사인 나도 어려워서 잠 안 올 때는 그걸 꺼내 조금만 읽으면, 아니 한두 장도 넘기기 전에 첫 문장에서부터 졸음이 댐 무너지듯 밀려온다. 불면증 치료에 왓땁니다!
성경책이 어려워야 교인들 앞에서 아는 척을 할 게 아니냐고, 어느 목사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그러더라만 자고로 번역이란 알아먹게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더구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해방역사를 다룬 성서를 어려운 말로 번역하고 읽게 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오늘날 통용되지도 않는 옛날 봉건시대 말을 말이다.
어려서부터 구닥다리 가라사대 성경으로 배우고 자라온 나 또한 달달 외우고 있는 성경 구절은 모두가 가라사대, 말미암아 버전이다.
이보다 눈부신 햇살이 있을까,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이 그렇고, 행복의 보석상자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타령이 그렇고 시편의 주옥같은 시들도 그렇다. 내가 즐겨 외우는 시편 23편 또한 구닥다리 가라사대 성경에 쓰인 그대로다.
박실댁 집사가 교인들 몇 분과 함께 군동댁 집에서 조상님 추모예배를 보는데 군동 양반을 앞에 놓고 전도란 것을 하시는 거였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나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안 허셨습니까. 목사님께서 금방 전에 가라사대, 그러기 따물로 주 예수를 믿어야 쓴다고 안 그라십뎌? 그래야 영생을 얻는다고요. 죽어가꼬 좋은데 안 가고 잡습니까?"
허허 참, 내가 한 말에도 가라사대를 붙여주시는군.
기실 죽어서 좋은데 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처럼 부족한 사람은 매주일 교회라도 출입해야 정신 차리는 종류고 어떤 사람들은 보이는 교회 말고 보이지 않는 교회에 이른 수준도 있을 것이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자식들 가르치려고 곰발바닥이 된 군동양반, 황소처럼 순하디 순한 저 눈, 바튼 기침소리는 영락없는 찬송가로구나.
열성 신자 군동댁에게 두손들고 제사를 추모예배로 바꾼 군동양반, 기운이 상당히 빠진 모습이었다. 교회 나가자고 너무 닦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시라고,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군동댁에게 언젠가 한마디했었다. 목사님이 그러시니까 부흥이 되지 않는다고 군동댁은 단박에 걱정 어린 반론을 펴왔다.
오늘따라 박집사는 또 왜 저렇게 하지 말라는(?) 전도를 하고 난리신가. 내 설교가 은혜스러웠던 모양인가? 병을 달고 사시는 군동양반 기력 없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그러시는 걸 게야. 이제는 우리 저 하늘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자는 뜻에서.
배 하나 깎아먹고 나온 대문 밖, 젖부들기가 늘어진 백구가 으르렁거린다. 네 새끼들 가져갈까봐 그러냐? 걱정 붙들어매시와요. 할머니 집사님들이 조심히 가라고 한마디씩 하신다.
"네, 할머니들도요. 오늘밤 편히 주무세요."
군동 양반이 손전등을 빌려주시겠다고 붙잡으신다.
달도 안 뜨고 어둡긴 하다. 그래도 손전등까지는 필요없는데 기어이 들고 가라신다.
군동 양반 빙그레 웃으시며 가라사대,
"예수님께서 길은 내가 지켜준다고 그라셨어도 밤에는 후레쉬가 있어야재라우."
푸하하하, 나는 뒤집힌 자라 꼴로 웃어댔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는 하셨지만 길을 지켜주신다고 하신 말씀은 금시초문인데, 군동양반은 그렇게 들으셨던가보다.
지금은 보기 귀한 국방색 기역자 손전등을 들려주시는 군동양반, 예수님보다 한끗발 높습니다요! 군동 양반은 집사님들이 멀어지고 군동댁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이어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가라사대,
"곧장 집으로 가십시요이. 술 생각나신다고 점방가지 마시고라우."
쌩긋 웃으신다. 저렇게 웃음의 소리도 잘 하시는 분이 추모예배 시간 내내 풀죽어 계셨구나. 내년에는 그냥 상 차려서 제사 지내라고 집사님에게 말씀드릴까. 아니 시방 무슨 소리를 하시냐고 펄펄 뛰시겠지?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길, 콧노래를 부르다가 휘파람을 부르다가 이어지는 성경암송. 시편 23편을 가라사대 버전으로 외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듯해져 온다. 잠자리에 들었을 친구들, 동네 홀로 주무시는 분들, 군동댁 군동 양반, 그리고 오늘내일 하신다는 우리동네 점쟁이 칠량댁 할매까지도 오늘밤 편히 주무시라고 기도를 대신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청불가사리, 빨강불가사리, 긴팔불가사리, 밤하늘에 뜬 별이 불가사리를 닮았구나. 별들은 밤바람에 여울이 되어 찰방거리고 구름을 빠져나온 달은 등대처럼 밤길을 살펴주는가.
어젯밤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재종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다리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빠는 사이 나는 제자리에 꼿꼿이 서서 첨성대가 되어 별바다에 잠겨들었다.
시골살이의 즐거움에서 별구경을 뺀다면 님 없는 가을 복판이요 단풍 껍데기만 잡고 치는 고스톱 판이렷다. 내가 원래 비유를 들어도 꼭 이렇다니깐. 혀를 한번 차시고 계속 읽어주세요.
달을 요렇게도 보아하니 이웃마을 금당못에서 해마다 만나는 하얀 연꽃, 백련봉오리를 닮아 있구나. 야, 다시 백련이 보고 싶다야. 백련 꽃봉오리를 코에 가져다 대고 한참을, 한참동안을 흠흠흠 그러고 있고 싶구나.
"이년도 아니고 저년도 아니고 백 년이나 보고 자퍼라우? 목사님은 능력도 좋아부요잉."
우리동네 사람들은 농담이든 진담이든 욕지기와 관계없는 말은 할 수가 없는 종족인가. 모처럼 시심에 깃들어 있는데 분위기 산산조각내는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이냐.
"그래 나 능력 좋다. 이 '염병할노므스키'야."
욕지기를 한바가지 퍼부어주었다.
"고거이 쏘련놈 이름이다요 욕이다요? 욕인갑는디, 목사가 되어 가꼬 욕을 막 해부러도 된다요? 인자봉께로 완전히 땡목산마 땡목사여."
피식 하면 하는 수법, 또 자기 불리할 때면 목사가 이러쿵저러쿵. 내가 뭐 목사를 직업 삼아 밥벌이를 하고 사는가. 언제든지 고위층 상류층 목사님들께옵서 '쯩'을 반납하라고 하면 생각하고 자실 것도 없이, 그러잖아도 한통속으로 욕 얻어먹는 것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잘됐다 하고 반납할 목사 라이센스가 아닌가.
이젠 거반 저물고 없더라만 하얀 연꽃바다, 금당못에 가고 싶었다. 우리집에서 어림잡아 십여 분쯤 걸릴까? 차를 몰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성전 못 미처 정남향으로 자리잡은 금당마을이 있다. 금당못에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하얀 백련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다. 이번 여름에도 백련을 알현하러 여러 번 찾아갔었지.
하루는 어린 비오리들, 동네 꼬마들을 쫑쫑쫑 이끌고 금당못으로 연꽃을 그리러 갔었다. 우리 교회는 지역 교육 모임들과 함께 여름방학이면 어린이 미술학교를 열고 있다. 모든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성경학교를 여는데, 나는 성경학교 대신 아이들이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한 화가 선생님과 며칠 같이 보낼 수 있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다.
작년에는 권정생 님의 그림동화 <강아지똥>을 그린 화가 정승각 선생님을 모셨고, 올해는 동요 <노을>의 노랫말을 짓기도 한, 평소 나와 각별한 내왕으로 우리 동네에서는 이미 아무개 양반으로 편히 불리는 화가 이동진 선생님을 모셨다. 아이들이 떼거리로 몰려오자 연잎에 앉아 졸고있던 개구리들이 "뭔노므 아그들이 요라코롬 시끄럽디야?"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씩 개굴개굴. 워따따따 웃기고들 있어. 지들이 더 시끄러운지는 모르고 말야. 연못 주인을 갈아치운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몇몇 아이들은 연잎 위에 앉은 개구리를 주인공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린 백련 그림과 그날 찍은 사진을 예배당 안에다 붙여 놓고 자주 들여다보고 있다.
한 해가 지나야 다시 만날 수 있을 하얀 연꽃아! 이제 그리움으로 한 해를 견뎌야겠구나. 지금으로선 자신이 없지만 해마다 잘 견디고 잘 버텨오지 않았던가.
오늘은 가을에 입을 옷들을 꺼내어 빨았다. 행주도 삶고 도마도 가을볕에 내다놓았다. 뒤꼍에 감나무 두 그루를 이어 빨랫줄을 치다가 말벌 시위대를 만났다. 창고 지붕 밑으로 호리병을 닮은 좀말벌 집이 보였다. 저걸 언제 지어서 나 몰래 살고 있었단 말인가. 가까이 날지 말아라. 빨래집게도 놀랐는지 이빨이 부러져라 있는 힘껏 옷을 깨문다. 나도 다리가 후들후들, 내가 어떻게 빨래를 널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도대체 이 집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어.
빨래도 다 널었겠다, 내 흙방 선무당(仙舞堂)에 들어가 차나 한잔 마실까?
올해는 벗들이랑 서너 번 즐겼던 백련다회(白蓮茶會), 향기 그윽한 백련 꽃송이를 따다가 녹차와 함께 큰 다기에 넣어놓고 미지근한 물을 부어 환한 개화를 보며 마시는 백련차, 그 오감을 자극하는 백련차는 아니지만 보이차, 솔잎차, 차 종류는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내 흙방 이름을 선무당이라 했던가. 가끔 욕도 할 줄 아는 땡목사요 돌팔이 목사인 나는 사람잡는 선무당이 아니겠는가. 선무당에 걸맞게 사는 집 당호 조차 선무당이니 기가 막힌 이름 궁합이렷다. 풀어 새기자면 신선 선(仙)자에 춤 무(舞)자를 쓴다. 내 아호가 어깨춤이라 어깨춤이 신선처럼 사는 집이어도 좋고 신선이 어깨춤을 추는 곳이라고 풀어도 되겠다. 선(禪)자에다가 없을 무(無)를 붙여 '일상을 통한 공부말고 다른 공부란 없다'는 뜻으로 선무당(禪無堂)이라고도 쓰고 착할 선(善)자에 무당이라고 무(巫)를 넣은, 착한 무당이 되어 살자는 뜻에서 선무당(善巫堂)이라고도 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장황한 해석이 따라다니는 선무당에 살고있는 선무당인 나.
나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교인들 앞에서 무슨 낯짝으로 감히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하면서 훌쩍거리는 노래나 두어 절 뽑다가 시간 전에 설교를 마치고 마는 얼치기 목사.
그러기라도 하면 인생이 술술 풀리기라도 한다는 말이더냐, 동네 가난뱅이들이랑 술술술로 밤을 새우다가 느닷없이 술병 낫게 안수기도를 해주겠다고 달려들어 "선무당이 사람잡네!" 웃음바다를 만드는 주정뱅이 목사.
그나마 재주가 보인다는 글도 잘 팔리지 않는 모양이라, 친구녀석의 위로하는 말처럼 글보다는 방송출연 쪽에 기울면 또 모르는 일이겠지만, 얼굴 팔리는 일도 싫어하고 변방의 슬프고 아픈 이야기만 골라 써대고 있으니 작가로서의 신수가 훤해질 일도 없을 것 같다. 선무당 주제에 그나마 사람이나 안 잡으면 다행이지. 세월아 네월아 억지빼기로 죽치다 보면 선무당도 옛말이 되려나. 나도 언젠가는 큰신 받아서 칼춤 출 날이 있으려나.
해가 짧아지려는가보다. 검은 솥뚜껑이 바삐도 내려오는군. 어두워지면 다시 별구경이나 해야겠다. 오늘은 별자리 어느 귀퉁이에다 무당 자리도 하나 보아두고 나 죽어 이사갈 선무당집 자리도 보아두련다. 백련 달빛이 가까운 어디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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