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co-Life/나의 사랑하는 생활

보고픈 울 할머니..

꿈꾸는 섬 2006. 9. 17. 17:34

 

5

 

 

     들녘에 벼가 황금색으로 변하여 고개를 숙이고

     청포도와 사과가 농익는 계절..

     코스모스 무리지어 피어나고..

     늦가을 은은한 국화꽃 만개하는 계절..

     여기저기서 벌초하느라 예초기 웅웅~하는 소리 들리는..

     그런 계절 가을이 다가오면.. 

     4년전 돌아가신 울 할머니에 대한

     옛생각이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나 어릴적 .. 뭘 잘 잃어버리는 편이었다.

     언젠가 가을운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쪽 신발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울며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울지 말라 하시며..

     할머니께서는 친히 나와 함께 돌아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나의 한쪽 신발을 찾아 나섰다.

     결국 이웃 형들이 숨겨놓은 걸 아시고선 호되게 야단치셨다.

     내게 신발을 건네주시는 할머님이 내겐 마징가z보다 로봇태권브이보다

     그 어떤 힘센사람보다 더 강하고 멋져보였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2남 4녀 중 다섯째인 장남이다. 그러니까

     위로 누님넷 그리고 나. 밑으로 남동생 하나가 있다.

     대대로 우리집안은 아들이 귀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에 대한 기대와 또 그에 따르는 사랑은 더욱 컸다.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이렇게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내가 참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라는걸 깨닫곤 한다.

     울 할아버지께선 나 태어난 후 돐이 채 되기도 전에

     울 가족의 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 내가 태어났을때

     기뻐하신 분이셨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 가장 사랑해주신

     분이셨단다.

     돌아가시기전.. "할멈 저 어린 것.. 잘 거두어 주시오.." 하셨다 한다.

     나 또한 내 기억엔 없지만 사진을 보며 울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날 항상 지켜보고 계심이..

     가슴 뜨겁게 느껴진다.

 

     난 어릴적부터 고등학교다닐때까지 줄곧 시골에서 자란 그야말로

     촌놈이다. 그러나 촌놈이라는 소릴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가 태어난 곳도 시골이고 내가 성장하며 영향을 받은 곳도 시골이고

     내가 꿈꾸며 살아온 곳도 시골이다. 난 그런 내 고향을

     사랑하고 늘 힘이들고 지칠때면 난 고향을 찾는다.

 

     방이 많지않아 난 늘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잤다.

     때로는 잠을 자다가 할머니 숨을 쉬지 않으셔서 살며시

     할머니 곁에 얼굴을 갖다대면.. 울 할머니 "너거 할매 죽은 줄 알았나.."

     하시는 말씀에 한숨을 쓸어내린적도 있다.

     늘 할머니 팔다리 여기저기 쑤신다고 안마해 드리면..

     동네 어르신들 마실나와서 울 집에 들르면..

     손자 칭찬에 입이 마를 정도이시다.

 

     대학시절..

     고향길을 다녀올 때면..

     울 꼬부랑 할머니 불편한 다리로 지팡이 짚으시고선

     동네 어귀까지 따라나오신다.

     "또 올끼제? 차 조심하고.. 이거 채비하고..맛있는거 사먹고.."

     하시며.. 내게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두어장 쥐어주신다.

     "할매~ 이런거 뭐하러 줘.. 나 돈 있어.." 그래도 한사코

     쥐어주신다.

     "이제 들어가! 다음에 또 올게.."

     "그래 어여 가여.. 어여~"

     그런 할머니를 뒤로 한채 뜀박질하다시피하여

     그곳을 떠난다..

     거의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쯤

     슬쩍 뒤돌아보면 울 할머니 꼬부라진 등을 지팡이로

     의지한채 뒤돌아서 걸어가시는 모습이 안스러워

     그만 내 손에 쥐어진 천원짜리 두장위로..

     참았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만다.

     내겐 그 천원짜리 두장이 그 어떤 귀한 것보다 더 귀하고..

     큰 사랑 그 자체였슴에..

     참 많이도 속을 썩였던 나 였는데..

     그 사랑은 날 향한 할머니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이

     함께 묻어난 사랑이었던 것이다.

 

     울 할머니 친구할머님들 하나 둘.. 할머니 곁을 떠나가시고..

     참 많이도 외로우셨다.

     난 늘 "내가 살아가는 수명의 단 몇년이라도 울 할머니께 드릴 수만 있다면.."

     생각했다. 그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울 할머니 고향에서 제일로 102세까지 장수하셨다.

     장수하신다고 어떻게 알았는지 kbs방송국에서 취재까지 해갔다. 결국

     살아생전에 하기도 힘들다는 매스컴! 우리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후

     몇개월 후 '생로병사의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타셨다.

 

     울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 늦은 밤..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 순간

     난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을거라는 직감을 했다.

     그날 밤은 넘기실 것 같으니 다음날 일찍오라는 어머님의 전화에..

     난 그날 밤을 눈물로 꼬박 지샜다. 새벽일찍 두시간 남짓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것 같다. 가서 뵈니 누워계신 할머니모습에 난 그저

     할머니 손을 부여잡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난 아직까지도 그때 그 할머니의 따뜻한 손의 느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차가울거라 생각했던 할머니의 손은 그 누구의 손보다도 더 따뜻했다.

     가쁜 숨을 내쉬던 울 할머니.. 내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시고선

     그제서야 평온하신듯..고개를 가늘게 끄덕이시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참동안을 난 할머니곁을 떠날 수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렇게 울 할머니는 우리 가족곁을 떠나가셨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내 곁엔 울 할머니의 살아 숨쉬는 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후 난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하늘엔 날 지켜보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있기에.. 난 아무리 힘들고 지친다해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할머니 돌아가신 기일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울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곳에 꼭 다녀와야겠다.

     벌초도 하고 좋아하시던 꽃 그중에서도 국화꽃을 가장 좋아하시는

     울 할머니곁에 국화꽃 한아름 안겨드려야겠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있을 수 있도록 내 존재의 가치를 일깨워 주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당신들...

     내 가슴을 저미며 눈시울이 적셔진다.

     하늘로부터 당신들의 주름지고도 따뜻한 그 손길이

     내게 내려와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

     내 눈물을 닦아주신다...

 

 

 

     울 좋은 님들.. 울 할머니 이야기 많이 길어졌네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 주신 님 정말 대단하시고..고맙습니다^^

     국화가 참 예쁘지요?!

     국화의 그 은은한 향기처럼..

     당신으로 하여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기쁨과 행복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길

     이 꿈꾸는 섬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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