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피천득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손녀 마당으로 뛰어 내려와 안고 들어갈 텐데 웬일인지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또 숨었구나!' 방문을 열어 봐도 엄마가 없었다. '옳지, 그럼 다락에 있지.' 발판을 갖다 놓고 다락문을 열었으나 엄마는 거기에도 없었다. 건넌방까지 봐도 없었을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았..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6.10
술 - 피천득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로 알 전부이다.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고 한 숨 짓노라. 예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滿醉..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6.10
내가 시골에 사는 까닭 쉿 들어봐! 불을 끄고 누웠는데 갈갈갈갈 골골골골 참개구리 우는 소리가 이리 좋을까. '잠도 오지 않는데 잠깐 밖에 나가 밤 마당이나 거닐다 올까?'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창호문을 열었어. 야, 오늘따라 달빛 한번 근사하구나. 바람에 나뭇잎들이 솨악솨악 쓸리는 소리, 멀리 개들이 컹컹 짖어 대는..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6.10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내 사랑하는 마중물 친구들과 함께...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 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문학과 진리/추천 도서 2010.06.09
장미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6.07
맛과 멋 --> -->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 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20
종달새 "무슨 새지?" 어떤 초대석에서 한 손님이 물었다. "종달새야." 주인의 대답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종달새라고? 하늘을 솟아오르는 것이 종달새지. 저것은 조롱鳥籠새야." 내 말이 떨어지자 좌중은 경탄하는 듯이 웃었다. 그날 밤 나는 책을 읽다가 아까 친구집에서 한 말을 뉘우쳤다. 비록 갇혀 있..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20
수필 수필은 청자의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길은 아니요, 서른..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20
봄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20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가 하루에 한 두번씩 더웁고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제 생일날 사주지 못한 ..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