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19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19
비원 비 오는 오월 어느 날 비원에 갔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주말도 아니어서 사람이 없었다. 비원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숲이 울창하며 산속 같은 데가 있다. 빗방울이 얌전히 떨어지는 반도지 위에 작고 둥근 무늬가 쉴 새 없이 퍼지고 있었다. 그 푸른 물 위에 모네의 그림 수련에서 보는 거와 같.. 문학과 진리/인연·피천득·샘터사 2010.05.19
낮달 고추, 가지 모종이랑 토마토 모종을 사와 점심때 닿도록 부지런히 심었다. 후북하게 물까지 길어주고 머리숙여 합장하며 잘 자라주길 기도했다. 올 여름에는 찬물 말은 밥에 된장을 담뿍 찍어 먹는 풋고추 한 밭이면 입맛 빼앗는 더위 아니라 더위 할애비라도 무어 두려우랴. 내가 즐겨하는 토마토는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4.16
'새벽 에너지' - 새벽에 나의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 전병욱 “새벽에 답이 있다!” 바닥난 당신의 에너지를 새벽에 충전하라!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붙들고 부르짖어야 살길을 찾을 수 있다. 내 삶에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불을 일으킬 전병욱 목사의 새벽 말씀. "새벽에 나의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위기와 침체를 이겨내고 놀랍게 도약할 원동력 .. 문학과 진리/추천 도서 2010.04.15
다윗은 기름 뿔에, 사울은 기름병에 담아 부은 이유 다윗은 기름 뿔에, 사울은 기름병에 담아 부은 이유 사무엘상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사무엘상 10장 1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 병(甁)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사무엘상 16장 1절과 13절에는 다윗에게 기름 뿔에 기름을 채워서 부으라는 명령을 받아 그대로 실행했다... 문학과 진리/신앙 칼럼 2010.04.15
돋보기 안경 순서 아짐이 저녁예배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놓고 간 돋보기 안경 글씨를 모르는 순서 아짐은 동갑내기 집사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저지난달에 찬송가책을 사고 지난달에는 성경책도 사고 얼마 전엔 돋보기까지 샀다 누가 볼까 맨 앞에만 앉는 순서 아짐은 성경책을 펼 때 찬송가를 펴고 찬송가를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4.06
따순 가슴팍 방깃방깃 꽃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병아리를 닮은 노란 수선화는 그토록 깡깡하던 얼음땅을 뚫고 올라와 펑펑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새순을 내민 일만도 그 아니 장하고 대견한 일인가. 하물며 꽃잎까지 나푼거리다니, 갸륵한 수선화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도 가실 마음이 없다. 토방 아래 고무신..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4.02
봄에는 꽃만 필까 후룩 후루룩, 라면발 넘어가는 소리가 토방 마루 너머까지 흘러나왔다. 인기척에 놀라 다급히 냄비 뚜껑을 덮는 소리는 그 뒤를 따라 이어져 들려왔다. "앗따메 민정이 엄마는 라면 잡수는 소리까정 곱네요이." 무색하겠다 싶어 선수를 먼저 쳐주었다. "금방 끼니땐디 뭔 라면이랍니까?" "이눔이 하도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6
저수지 둑길 오늘 하늘은 구름떼로 뒤덮여 열기가 많이 수그러든 여름날이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후텁지근하기는 매일반이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대자리에 누워 있는데 볕 마당 대신 방에다 널어둔 고추 때문에 재채기가 연발이었다. 빨간 고추들이 자꾸만 나를 밖으로 떠밀어냈다. 구멍가게에 들러 얼음 .. 문학과 진리/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참수필집·이레 2010.03.26